Explore
Also Available in:

나는 믿지 않는다! (I don’t believe!)

창조과학을 비판하던 한 젊은이에 대한 이야기

번역 Korea Association for Creation Research 번역: 한국어창조과학회 (creation.kr)

http://creation.or.kr/library/itemview.asp?no=778

https://creation.com/a/2240

https://creation.com/i-dont-believe

나는 믿지 않는다! (I don’t believe!)

: 창조과학을 비판하던 한 젊은이에 대한 이야기

에 의해 , Ph.D.

한 젊은이의 어둠 속으로의 비극적인 타락은 성경말씀을 진화론에 부합시키려는 시도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크리스천이면서 동시에 진화론을 믿을 수 있다는 사람을 당신은 얼마나 자주 만나는가?

사 실상 오늘날 교회에 나가는 신앙인들 가운데 이와 같은 관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에게 그 관념을 변론해보라고 하면, 그들은 과학은 ‘어떻게’를 설명하고, 성경은 ‘왜’를 설명한다고 대답한다. (잘못된 생각이 유발할 위험을 피하기 위해 ”유신론적 진화론자들과 점진적 창조론자들” 을 참고하시오).

창세기를 문자 그대로의 역사로 받아드리지 못하는 사람들은 지구가 6일 동안에 창조되었고, 지구의 나이 또한 6000 년 정도라는 것을 이의 없이 수용하는 크리스천들을 자주 조롱하고 있다.

실예로, ‘크리스(Chris)’ 라는 어떤 젊은이는 자기 생각을 너무도 확신한 나머지 반-창조론 웹사이트를 개설하였다.1 그는 그의 웹사이트에 창조론자들과 창조과학적 생각을 조롱하는 글로 ”나는 무엇을 믿는가?” 라는 글을 게재하였다. 그 글에서 크리스는 ‘북미침례교도(North American Baptist)’ 라고 자기의 정체를 밝힌다. 그는 성경을 단지 ”좋은 도덕 지침서” 라고 주장한다. 만약에 그 도덕적 가르침을 모든 사람들이 믿어 세계가 훨씬 좋은 곳이 될 것이라는 것이 확실하다면, 우리는 그 가르침을 좇도록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라는 명제를 인정한다고 그는 말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왜 크리스는 반-창조론적 주장을 하고 있는가? 이에 대해 그는 이렇게 기술한다.

”내 가 다니는 교회가 진화론이나 빅뱅 이론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을 고려할 때, 이 질문은 어쩐지 엉뚱한 것 같다. 그러나 나는 나의 믿음을 견지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 여러분들 가운데 진화론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글쎄, 여러분들을 위하여 계실는지 모르지만, 나를 위해서는 아니다. 과학은 어떻게, 무엇을, 어디서, 그리고 언제에 관한 나의 질문에 답을 준다. 성경은 누구에 대한 질문에 답을 준다. 여러분들도 이 둘을 다 요구할 것이다. 그 두 방향의 질문들은 서로 양립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서로 상호보완적이다.”

그 렇다면, 진화론을 믿고 있으면서 동시에 성경의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간증할 수 있을까? 위 글에서 크리스는 가능하다고 단언하고 있다.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어떨까? 크리스는 자기 믿음을 ‘끝까지 견지 할 수 있었을까?’ (마가복음 13:13; 디모데후서 2:12).

놀 랍게도 인터넷이 위에서 인용된 크리스의 말에 대한 추신 내용을 제공하고 있다. 그 추신 내용은 우리에게 크리스의 이후 인생행로의 일단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위에 언급된 웹페이지에는 이제 다음과 같은 말이 게재되어 있다. 즉, ‘이 웹페이지는 정식으로 닫는다’ 라는 말과 함께, 크리스가 지금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알려면 링크된 주소를 클릭하라는 재미있는 초청의 말이 포함되어있다.

”내 새로운 웹사이트에서 알 수 있겠지만, 요약하자면 내가 이 웹사이트를 닫는 이유는 주로 나의 신념체계에 변화가 생긴 까닭이다. 하지만 나를 위한 걱정을 사양한다. 나는 여전히 창조론자는 아니다.”

신념체계에 변화가 생겼다고? 크리스의 새 웹사이트에 연결 궤적을 좇아들어 가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드러난다.

”이 [새로운] 웹페이지의 목적은 나의 종교관과 세계관을 널리 알리기 위함이다. 내가 목적하는 바와 나의 개인적인 신념, 믿음의 결핍 등은 내가 발표한 많은 글들을 통해서 말했다.”

믿음의 결핍이라? 연결궤적을 좇아 들어가다 보면 굵은 활자체로 된 ”나는 믿지 않는다!!!”라는 제목으로 쓰인 글이 실린 새 페이지가 열린다. 이 글에서 크리스는 다음과 같이 진술하고 있다.

”나 는 믿지 않는다. … 많은 사람들은 네가 무엇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냐? 라고 묻는다. 나는 모든 것을 안 믿는다고 대답한다. 사실상 나는 모든 것을 믿지 않는다. 나는 어떤 것도 믿지 않는다. 최소한 나는 믿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사람들은 너나없이 모두가 무엇을 믿는지, 또 왜 그것을 믿는지를 진지하게 생각하여야 한다. 만약에 그것을 오랫동안 생각하다 보면 혼란해 질 수도 있을 것이다. 당신들은 수많은 모순되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더욱 안된 것은, 당신들이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던 것들이 실질적으로 무한대로 많다는 것이다. 당신들은 그런 것들 모두를 결코 사유할 수 없을 것이다. 당신들의 마음은 너무도 작아서 충분한 시간을 가질 수 없다. 이와 같은 생각들 모두가 나에게 믿음의 위기를 가져다주었던 것이다. 이 사안에 대하여 내가, 또는 어느 누구가 이 무한대로 광대한 우주를 만들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우리가 무엇을 믿어야 한다는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제각기 다르다. …그렇지만 지금 내가 도달한 결론은 내게 믿어야 할 최선의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다. 나는 옹호하여야 할 철학도 없다. 뿐만 아니라 걱정하여야 할 모순되는 믿음도 없다. 그리고 어떤 것도 내 세계관을 훼방하지 못한다. 나는 지금 예전보다 더 분명하게 사물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나는 믿을 수 없는 것이다....”

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 크리스가 충심으로 진지한 답을 원하고 있다는 전제에서 하는 말이지만, 만약에 그가Answers in Genesis 웹사이트 정보를 마음껏 이용하였다면, 그는 6일간의 창조에 대한 실질적인 설명과 성경은 믿어야만 하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것이며, 아마도 오늘과 같이 그런 혼란스러운 상태에 빠져버리지 않았을 것이다.

왜 그런가 하면, 성경은 심정적으로 현실과 동떨어져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상 성경은 우리 주변 세계를 완벽하게 설명하고 있다. 즉 우리가 보는 것,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었는가를 설명해준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가장 중요한 계명”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여야 한다고 대답하셨다 (마가복음 12:30). 크리스의 경우는 그렇게 하지 못한 자가 맞이하는 결과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비극적인 실례라고 하겠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지 않게 되면, 그는 아무 것도 믿지 않게 되고, 또 아무 것이나 믿게 된다고 한다.3 크리스의 웹사이트에 실린 그의 글들을 읽다 보면, 이 사실이 확인된다. 그가 ‘믿음의 위기’를 경험하고부터, 그리고 그리스도와 그의 말씀에 대한 믿음에서 한번 미끄러져 버리고 나서부터, 크리스는 켈트족의 드루이드교의(이교주의)와 신-이교 교의에 관한 연구를 하게 되었고, 마침내는 몇몇 친구들과 더불어 이교 예배를 조직하게 되었던 것이다.

”일찍 공원에 도착한 나는 공원 후면의 후미진 곳에 제단을 설치하였다. … 여승은 제문 첫 행부터 읊기 시작하였다. ”고 귀한 여신께서 아니 계신 곳이 없다 - 기묘하고 불가사의한 아름다운 세상을 통하여 - 마력을 쓰시며 자유롭게 황막하고 광대한 모든 곳에 드나드신다. … 여신은 두려운 존재다. 죽음의 힘도 그녀 앞에 머리를 수그린다. …그런 다음 그 모임의 사제이고 또 두 번째 서열의 자리에 있는 나는 내가 앉은 자리 뒷면에 촛불을 세워두고 ‘우리의 여신은 사랑의 여신이시다. 그녀의 의지에 따라서 태양은 생명을 새롭게 한다”를 되뇌었다.”

이 글을 읽는 크리스찬들은, 이전에는 성경을 가르치는 교회에 속하여 있다고 간증하던 한 젊은이가 하나님의 계명을 노골적으로 무시하고, 그와 같은 이교예식을 드리는 단계에까지 타락할 수 있다는 것을 보고 틀림없이 충격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비록 크리스는 ‘아무 것’도 믿지 않는다고 주장하지만, 그의 글들은 명백하게 반-성경적 위협으로 크게 편향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의 글들 중의 한 글(그는 ‘우화’ 라고 호칭한다)에서, 어떤 마을의 주민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 주민들은 ‘에크나롱지(Ecnarlongi)’ 라는 신을 경배한다. 그러나 그들의 일상적인 경배가 줄어들지만 전혀 피해의 표적이 없을 때에, 선지자가 나타나서 그들을 비난한다. 마을 사람들은 몇 번의 토론 모임을 가진 후에 선지자를 (다른 두 사람과 함께 교수대 위에서 교수형을 집행하여) 죽이기로 결의한다. 그런 다음 그 선지자는 마지막 숨을 들이마시면서 이렇게 말한다, ‘에크나롱지의 신이시여,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저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의 최근의 글은 크리스의 시각이 얼마나 가련하게 바뀌었는지를 잘 드러내고 있다. 그는 두려움과 혼란 때문에 비참한 우울증과 절망감에 시달리는 기간에 관해서 말하고 있다.

”혼 란의 와중에서 나는 사방에서 나를 감싸듯 다가오는 어둡고 불길한 벽들을 넘어 더 먼 곳을 내다볼 수 없다. 우울증과 고독감을 감내할 수 없다. … 누구도 나를 도와줄 수 없다. 누구도 나를 이해하지 못 한다. 누구도 나를 걱정하지 않는다. 나는 스스로를 쓸모없고 무의미한 존재로 느낀다. 나는 아무리 애써도 삶을 계속하기 위해 고생할 이유를 찾을 수가 없다. 이보다 더 나쁜 것이 어찌 있을 수 있을까?”

”나 는 여러 번 혼란에 빠졌었다. 매 번 앞에서 경험한 혼란상태보다 더 나쁘면 나빴지 좋아 진 적이 없었다. … 혼란상태는 점점 더 어두워지고 있다. 더 많은 함정들과 해자(垓字)들, 그리고 위험한 낭떠러지들이 구석구석에서 입을 벌리고 나를 기다리고 있다. … 이 혼란의 심연에서 언젠가는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나는 여전히 맹목적으로 앞으로 터벅터벅 걸음을 내딛는다. 하지만 나는 어둡고 공허한 미로 속에 들어서있고 나는 자주 자신감을 잃는다. 지금까지 나는 그런대로 자신감을 되찾을 수 있었고, 온전한 정신을 사다리처럼 이용할 수 있어, 저 먼데 있는 불빛을 향하여 기어나갈 수 있었다. … 그러나 나는 언젠가는 내 자신감을 영원히 상실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워한다. …그 어두움은 나를 갉아먹고 끝내는 나를 죽일 것이다. 나는 이것을 알고 있다. 그것은 내가 그 미로에 빠져있는 동안 내가 받은 피해가 어떤 것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정적인 미망 경험으로도 받은 상처가 영영 치유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데, 끝없는 미망 경험이야 죽음에 까지 나를 끌고 가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 않겠는가! … 언젠가는 최선의 경우에서도 어쩌면 나의 심정적 정신적 능력이 나를 그 어두움으로부터 건져내는데 충분하지 못할 때가 있을는지 모른다. … 안내하는 지도가 있다한들, 어두움 속에서 불빛이 없는 데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 모든 와중에서 크리스는 무언가를 찾으려 뒤쫓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이 진정 무엇인지 ”나는 알 수 없다. 나는 도저히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가끔 내가 확실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어쩌면 틀린 가정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그의 결론을 들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내 글의 독자들에게 나는 나에 관한 걱정일랑 접으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아직은 말이다. 이 글을 쓰는 일로해서 나는 매우 위험한 함정에서 빠져나오는데 도움을 받았다. … [그러나] 나는 다음 일을 생각하고는 벌써부터 겁을 먹는다. 나는 아직도 끝이 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어쨌거나 나는 갈 길이 멀지 않기를 희망한다. 나는 이 미망을 얼마나 더 견디어내어야 하는 건지 알 수 없다. 갈 수 있는 다른 곳이 어디일까? 무엇을 포기하여야 할까? 받아들여야 할 것은 또 무엇인가? 무엇이 더 있다는 것인가? 어쩌면 나는 마냥 꿈을 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어찌 비극이 아닌가!이 젊은이의 절망은 성경을 진화론과 타협하여 해석하는 데서부터 시작되었다. 교회에 나가는 젊은이들 중에서 얼마나 많은 청년들이 Chris의 경우에 못지않게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에베소서 4:14) 이리저리 나부낄 만큼 취약한지 모른다. 그것은 그들이 창세기가 복음서의 기초라는 것을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See Q&A: Creation: Why It Matter)

그 런데 이러한 위험한 우물가에 서있는 자들은 젊은이들 뿐만이 아니다. 유명한 복음전도사였던 찰스 템플턴(Charles Templeton)의 불신앙으로의 전락은 심지어 교회 지도자들도 면역(免疫)이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좋은 예이다. (See Slippery Slide to Unbelief). 한 때 간증을 하기도 하던 이들이 신앙에서 실족할 때, 그리고 그들의 영향으로 다른 성도들까지도 신앙에서 실족할 때 문제는 증폭된다. (Chris는 자기 웹사이트를 통해서, 템플턴은 그의 저서 ‘하나님이여 안녕히 (Farewell to God)’ 4를 통해서).

이 두 이야기는 창세기 말씀을 오류투성이의 인간사상(진화론)과 타협하지 않아야 하는 교회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어쨌거나 크리스천들은 이 세상의 ‘현실’에 부합하려고 성경의 말씀까지 ‘왜곡’ 할 필요는 없다. 왜 그런가 하면, 실험과학 (생물학, 지질학, 천문학을 포함하여)의 모든 분야에서 드러난 증거 - 정확하게 말해서 지구의 역사에 관한 목격담에서 기대되는 것 - 들은 성경의 말씀과 절대적으로 모순되지 않기 때문이다. (See ‘The Earth: How old does it look?’ ‘How would you answer?’)

성 경은 생물학, 지질학, 그리고 천문학 분야에서도 인정되고 있기 때문에, 성경은 역사학에서나 도덕과 구원의 문제에서도 또한 인정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찰스 템플턴이나, 크리스와 같은 사람들 (사실상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Good News)은 신실하고 진리이다. 이렇게 해서 우리들은 우리의 창조주 하나님은 ‘진리의 빛’ 예수 그리스도━우리의 크신 하나님이시며 구세주이신(디도서 2:13, 베드로후서 1:1)━를 이 세상에 보내시어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는 영생의 빛을 이 세상에 있는 동안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하셨다. 그것은 하나님은 빛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 안에는 어두움이 조금도 존재하지 않는다. (요한일서 1:5).

References

참고 문헌및 메모

  1. 301 Startling creationist lies and misquotes, http://www.geocities.com/CapeCanaveral/Hall/3083/, 6th February 2001, which despite its title is ostensibly a rebuttal of a book by Peter and Paul Lalonde, 301 Startling Proofs and Prophecies: Proving that God Exists. The footer of this webpage reads: ‘This Darwin’s Web Ring site is owned by Chris Patton.’ Chris also operates under the web alias ‘Aeikkin’, and identifies himself as being male. 텍스트로돌아 가기.
  2. Aeikkins Grove, http://www.geocities.com/aeikkin/index.html, 25th January 2001. 텍스트로돌아 가기.
  3. The American Chesterton Society, 31st January 2001. 텍스트로돌아 가기.
  4. Templeton, C., Farewell to God, McClelland & Stewart, Inc., Toronto, Ontario, Canada, 1996. 텍스트로돌아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