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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공간 내에서의 복음

현대과학에서는 우리에게 친숙한 3차원(길이, 폭, 높이)이 실재하는 전부가 아니라는 개념에 어려움이 없다. 이를 아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역을 이해하기 쉽게 해준다.

저자:
번역자: 한국창조과학회 (creation.kr)

NASA 촬영 7278andromeda-galaxy

성경은 하나님이 영원에 거하시며(사 57:15), 하늘에 거주하시고(예, 신 26:15), 또한 빛에 거하신다고(딤전 6:16) 말해준다. 편의상 우리는 이것을 합하여, 하나님이 하늘의 차원 또는 영원의 차원에 거주하신다고 말할 수 있다. 그와 대조적으로, 우리는 3차원 공간(길이, 폭, 깊이)과 1차원 시간의 세상에서 살고 있다.1

비록 하나님이 영원의 차원과 우리가 사는 우주에 편재하시지만(모든 곳에 존재하시지만), 그분은 또한 특별한 시간에 특별한 방법으로 우리가 사는 세상에 나타나셨다. 예를 들면, 하나님의 성령은 창조시에 물 위를 이동하셨으며(창 1:2), 여호와 하나님은 불타는 떨기나무 가운데서 모세에게 나타나셨고(출 3:4-14), 아들 하나님은 성육신 하실 때에 영원의 차원을 떠나서(요 1:1-2, 빌 2:5-7) 특별한 방법으로 우리의 세상으로 들어오셨다(마 1:18, 눅 1:35, 요 1:14). 부활하신 후에 예수님은 그분의 제자들에게 여러 번 나타나셨는데, 그 중에는 문이 닫힌 방에 두 번 나타나신 것이 포함되며(요 20:19-30), 승천하실 때에 예수님은 우리의 세상을 떠나셔서 하늘의 차원으로 돌아가셨다(요 20:17, 행 1:9).

7278flatland

이 글의 목적은 평지(Flatland)의 우화를 이용하여 이들 현상을 보다 분명하게 이해하는 데에 있다.2

평지(Flatland)

길이와 폭을 가지며 높이가 없는 2차원의 땅을 생각해 보자. 이를 평지(Flatland)라 부르며 그림 1에서 ABCD로 표시되어 있다. 여기에 O안의 ▲로 표시된 지적인 존재가 살고 있는데, 그들 모두는 역시 2차원만을 점유한다. 어느 날 평지의 사람이 일어나 보니까 누군가 미지의 사람이 자기들 땅을 가로질러 선 EF를 그려놓은 것을 발견했다. 이것은 그들의 나라를 사실상 두 개로 갈라놓았다. 왜냐하면, 높이의 차원이 없는 경우에는 아무도 그 선을 뛰어 넘거나 그 밑으로 터널을 뚫거나 하여 다른 쪽으로 건너갈 수 없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선의 이쪽에 있는 사람은 아무도 저쪽에 있는 사람과 정보를 교환할 수 없다. 따라서 EF는 사상(事象)의 지평선(event horizon)이다(부록1. box 안의 글을 보라).3

어 느 날 ABFE 영역에 어떤 모양(발자국의 외곽선)이 나타났는데(그림 2), 평지사람이 생각하는 한 그것은 분명히 저절로, 그리고 아무 원인이 없이 생겨난 것이다. 다음번에 그 모양이 다시 나타났을 때, 평지사람들은 그것을 지키기 위해 그 주변에 선을 그렸다(그림 3). 2차원에 사는 평지사람들에겐 이것이 사상의 지평선이었으며, 이는 원으로 둘러싸인 영역에서는 밖으로 아무것도 나갈 수 없고 그 안으로 아무것도 들어올 수 없음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원의 일부를 제거하고 조사해 보았을 때 그 모양은 사라졌다. 이제 평지사람들은 세 가지의 상황을 처리해야 한다:

  1. 그 모양은 아무런 원인 없이 나타났다가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2. 그 모양은 사상의 지평선에 의해 방해를 받지 않았다.

  3. 똑같은 사상의 지평선이 평지사람들을 완전히 가로막았다.

(부록 1) 찬사 (A tribute)

여기서 제시한 평지(Flatland), 가외의 차원(extra dimensions), 사상의 지평선(event horizon) 등의 개념은 1987년에 고(故) 와일더 스미스(Arthur E. Wilder-Smith) 박사-교수(1915-1995)가 쓴 책, The Scientific Alternative to Neo-Darwinian Evolutionary Theory에서 나온 것이다.

와일더 스미스는 과학의 세계에서는 그의 동년배 가운데 거물로서, 세 개의 박사학위를 얻었다. 7개 국어를 마스터한 그는 또한 창조과학에 대한 최초의 사상가이며 위대한 개척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

기타 잘 알려진 그의 작품으로는, Man's Origin, Man's Destiny, He Who Thinks has to Believe, The Creation of Life, The Natural Sciences Know Nothing of Evolution 등이 있다.

평지(Flatland)에 대한 생각은 (비록 기독교인들이 적용하지는 않았지만) 1884년에 에드윈 아보트(Edwin Abbott)가 Flatland: A Romance of Many Dimensions라는 책에서 처음으로 주장했다.

이 들 모든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낸 사람은 별난 성격을 가진 Zweisteinus 박사이다. 그는 먼저, 평지사람들에게 그들이 과학적 물질주의를 가지고 있다고 상기시켰다. 즉, 그들은 평지의 2차원이 일반적으로 현실을 표현하는 전부라고 믿었으며, 그들의 생활양식은 이러한 비진리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는 계속하여 말하기를, 평지는 단 하나의 실체가 아니며,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모양은 그들이 알고 있는 길이와 폭이라는 2차원 이외에 최소한 세 번째 차원이 존재한다는 가능성을 지적해 준다고 말한다. 그는 이 세 번째 차원을 ‘고도’ 또는 ‘깊이’ 또는 ‘높이’라고 했다.

그는, 발바닥 모양을 만들었던 3-D의 존재는 2-D의 감옥(2-D의 사상의 지평선) 위로 발을 옮겨 놓는 것만으로도 자기 자신이 거기로 들어가기도 하며 나갈 수도 있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3-D의 존재는 2-D의 평지사람들이나 구속시키는 2-D의 장벽에 못 들어가거나 못나올 수 없다. ‘2차원은 3차원의 인질을 잡아두기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낮은 차원의 사람들에게는 그 이외의 차원이 있어야만 전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다.’2 따라서 3-D의 존재는 평지에 자기 자신을 마음대로 나타낼 수 있으며, 평지사람들이 그들의 존재를 알지 못하는 사이에 그들을 상세히 관찰할 수 있다. 심지어 다른 평지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그들의 내부 ▲까지도 볼 수 있다.

이제 차원 이론(dimension theory)이라는 이 개념을 성경에 기록된 몇 가지 사건과 관련시켜보자.

창조

창조가 일어나기 위해 필요한 정보는, 공간과 시간의 밖에서, 그리고 그것(공간과 시간)들이 창조되기도 전에 하나님, 즉, 말씀(Logos)의 마음 가운데 존재했다(요 1:1, 그리스어 logos = 말씀). 즉, 모든 창조는 ‘창세전에’(엡 1:4, 벧전 1:20) 하나님의 마음 가운데 존재했으며, 따라서 영원의 차원에 존재했다. 하나님은 창조를 일으키기 위해 필요한 정보(및 능력)를 사상의 지평선을 통해, 각각의 양 또는 분량만큼씩, 창세기 1장에 기록된 6일에 걸쳐 보내셨는데, 이 사상의 지평선은 영원과 공간-시간을 가르는 것이다.

아담이 만들어지고 그가 죄를 짓기 전까지 그는 (차원적으로 말할 때) 혼성물(hybrid)이었다. 에덴동산에서 그는 영원에 거하시는 하나님과 함께 걸었으므로, 따라서 그는 여러 차원의 영원에 대한 일부를 체험하였으나, 그는 역시 공간-시간 안에 존재했다. 그가 하나님께 불복종했을 때 하나님은 그를 에덴에서 쫓아내시고 그로 하여금 죄를 지은 상태로 생명나무를 먹고 영원히 사는 것을(창 3:22; 3:24) 막으셨다.

(부록 2) 다차원과 하나님 -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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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매일 경험하는 차원 이외에 또 다른 차원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과학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사실은 여러 가지 성경적인 개념을 보다 확실하게 해주는 흥미로운 방법을 제공해 준다. 그러나 때로는, 영원하신 하나님을 순간마다 변화하는 관점에 끼워 맞추려고 하는 등 생각이 지나칠 수가 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잘 아는 ‘급진적인 창조론자’(그들 역시 와일더 스미스의 ‘평지’ 개념을 종종 사용한다)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정확하게 10차원이 있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증명되었으며, 이 발견은 다소간 성경을 확증해준다고 생각하게끔 하고 있다.

첫째로, 이것에 관하여 얘기해 주는 성경적 가르침은 없다. 둘째로, 이 불확실한 관념은 끈 이론(string theory)라고 하는, 고도로 추상적이며 이론(異論)이 분분한 분야의 물리학에 근거한 것이다. 이 이론은 11차원을 가정하는 초끈 이론(superstring theory)으로부터 나온 것인데, 그 이론 역시 실험적인 뒷받침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다. 그 이론의 제안자에 따르면, 이들 가정상의 차원 중 일부가 보이지 않는 이유는 그것들이 상당히 작은 공간으로 말려 올라갔기 때문이라고 한다.

기독교인들이 사고(thinking)에 있어서 오늘날의 과학(예를 들어, ‘빅뱅’, 10차원 등등)과 결혼한다면 내일은 홀아비/과부가 될 것이라는 말이 맞다.

그러나 사람은 영원히 살도록 만들어졌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과 다시 연합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하셨다. 아담의 죄가 인류로 하여금 하늘의 차원에 도달하게 하는 사상의 지평선을 닫아버린 반면, 죄 용서하심은 이 사상의 지평선을 열어놓는다. 이 용서는 죄의 값을 치러주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하여 온다. 이것은 오직 각 개인의 회개와 믿음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러한 방식으로 하나님의 용서하심을 받아들인 사람은 이 세상에서 영원하신 하나님과의 교제를 경험하는데(요 1:12; 17:23), 아담이 원래 가졌던 것보다는 훨씬 못 미치지만, 다음 세상에서 그들은 하나님과 연합할 것이다.

부활 - 예수님이 나타나심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으로부터 일어나셨을 때, 그분의 부활하신 육체는 이 공간-시간 세상을 떠나셔서 영원의 차원으로 들어가셨는데, 수의를 흐트러뜨리지 않고 통과하셨다. 예수님의 머리를 쌌던 수건은 딴 곳에 감겨져 있어서(즉, 여전히 감긴 채, 시체를 썩지 않게 처리하는 데에 사용하는 몰약과 향료의 끈적거리는 혼합물로 인하여 뻣뻣한 채로), 사도 요한은 이를 보고 부활을 믿었다(요 19:39-40; 20:7-8). 비록 요한은 차원 이론을 몰랐을 테지만, 그는 사실상 예수님이 시간과 공간의 차원을 초월하셨다는 것을 실감했다. 평지에서의 발자국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우리에게는 똑같은 행동을 하는 것이 전적으로 금지된 사상의 지평선에 영향을 받지 않은 채, 문이 잠긴 방에 나타나시고,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가 사라지실 수도 (예를 들면, 엠마오 도상에서처럼) 있었다.

승천하실 때(행 1:9) 예수님은 공간-시간과 천국의 사이에서 사상의 지평선을 통과하셨다. 지금은 신자들이 기도를 할 때에, 믿음에 의해 신자들에게 거하는 성령을 통하여, 올라가신 주 예수님께 다가간다(요 14:16-17).

천국과 지옥, 그리고 심판

사람이 죽을 때 그의 혼(soul)과 영(spirit)은 죽음이라는 사상의 지평선을 통과하여 이 공간-시간의 세상을 떠난다. 이것이 공간 및 시간이 끝나고 시간의 초월이 시작하는 경계이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죽음 이후에는 천국 및 지옥과 다가올 심판이 있다고(히 9:27)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심판에서는 예수님의 대속의 죽으심과 부활에 관한 (이 세상에서의) 믿음에 근거하여, 우리가 최후에 천국으로 갈 지 지옥으로 갈 지를 결정한다. 천국과 지옥과 마지막 심판은 모두 영원의 차원 안에서 존재하고 일어난다. 그러므로 그것들은, 모두 사상의 지평선 뒤에 감추어져 있기 때문에(부록1 참고), 과학으로는 절대로 알아낼 수 없다.4) 그러나, 이것은 그것들이 실제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 개념은 완벽하게 과학적이며, 그것들은 사실상 최고의 현실이다. 따라서, 무신론자들이 오랫동안 주장해 온 물질주의적 신조, 즉, ‘지금 여기에’ 있는 우리의 공간-시간 연속체가 유일한 실체라는 것은 과학적으로 불합리한 것으로 보인다. 회의론자와 무신론자 등의 사람들은 위험을 각오하고 이것을 무시한다.

(부록 3) 블랙홀과 사상의 지평선

NASA 촬영 7278helixnebula

우주비행사들이 달에 갔을 때, 그들의 우주선은 속도가 소위 탈출속도라고 하는 11.2km/sec(25,000mph) 이상이어야 했다. [1] 그래야만 지구의 중력이 잡아당기는 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이제 질량이 충분히 큰 항성을 생각해 보자. 그 중력이 매우 커서 탈출속도가 빛의 속도인 300,000km/sec (186,000 miles/sec)이 되기 전까지는 중력 붕괴(천체가 중력의 작용으로 수축해 가는 현상)를 받는다고 생각하자.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원리로 예측해 보면 그러한 영역에서는 공간이 매우 만곡되어 빛이나 혹은 그 아무것도 탈출할 수 없다. 그러므로 그 항성은 보이지 않을 것이다(따라서 근처에 있는 물질에 미치는 중력의 영향으로만 그것을 감지할 수 있다). 그 결과는 블랙홀이 될 것인데,[2] 스테픈 호킹(Stephen Hawking)은 이것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 '중력이 매우 강해서 그것으로부터 심지어 빛까지도 탈출할 수 없는 공간-시간의 영역” [3]

빛의 광선이 밖으로부터 블랙홀 근처로 향한다면, 블랙홀의 중력 인력에 의하여 편향될 것이며, 아주 근접한다면 블랙홀 주변의 궤도로 들어올 것이다. (그것이 블랙홀로 향한다면, 흡수될 것이다.)

블 랙홀의 경계, 즉, 외부로부터의 빛이 궤도로 들어오는 곳, 또는 블랙홀 안으로부터 빛의 광선이 탈출하기를 실패하는 그곳을 사상의 지평선이라고 한다. [4, 5] 그것은 블랙홀 주변의 돌아오지 않는 점을 나타낸다. 이런 이름이 붙은 이유는 어떤 사상의 발생이라도 전달할 수단이 없으므로, 아무런 사상도 이 영역에서 밖으로 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블랙홀 내부에서 일어나는 어떠한 일도 그 밖에 있는 관측자가 알 수 없으므로 과학으로는 알 수 없다. 이런 현상을 ‘우주의 검열(censorship)’이라고 한다.[6]

참고 문헌및 메모

  1. 탈출속도란 동력이 없는 물체가 행성 또는 항성의 중력장에서 벗어나는 데 필요한 속도이다. 그것은 다음 식ve = √2GM/R 로 주어지며, 여기서 G는 만유인력상수이고, M은 행성 혹은 항성의 질량이며, R은 그 반지름이다.
  2. ‘블랙홀은 단순한 이론적인 개념 이상의 것이다. 그것들은 수많은 실험적 증거로서 뒷받침 된 일반상대성으로부터 직접 예상한 것이다.’ Russell Humphreys, Starlight and Time, Master Books, CO. 80936, USA, 1994, p. 22.
  3. Stephen Hawking, A Brief History of Time, Bantam Books, London, 1988, p. 194.
  4. Ref. 3, p. 90.
  5. 블랙홀 주위의 사상의 지평선의 반지름을 Schwarzschild 반지름이라고 하며, 다음 식 RS = 2GM/c2로 주어진다. 여기서 c는 진공에서 빛의 속도이다. 그것은 독일의 천문학자 Karl Schwarzschild(1873-1916)의 이름을 딴 것인데, 그는 1916년에 방사능을 방출하지 않는 붕괴된 항성체의 존재를 예측했다. 만약 태양이 블랙홀로 붕괴된다면 그 사상의 지평선의 반지름은 3 km(2 miles)밖에 안될 것이다.
  6. Ref. 3, p. 93.

참고 문헌및 메모

  1. As our space-mass-time universe (sometimes called the space-time continuum) was created by God, He is therefore beyond or transcendent to it—i.e., not subject to its limitations (Genesis 1:1). 텍스트로돌아 가기.
  2. Adapted from A.E. Wilder-Smith, The Scientific Alternative to Neo-Darwinian Evolutionary Theory, Word for Today Publishers, CA 92704, USA, pp. 159–191, 1987. Used with permission. 텍스트로돌아 가기.
  3. Note that black hole event horizons are one-way, while the Flatland event horizon is two-way. 텍스트로돌아 가기.
  4. God, on the other hand, is omnipresent and intimately aware of all that we say and do (cf. the 3-D being vis-a-vis the Flatlanders). He is ‘nearer than breathing, closer than hands and feet.’ See Psalm 139:7–14. 텍스트로돌아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