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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는 말하고 있는 그대로를 의미한다고, 요세푸스는 말했다

저자:
번역자: 한국창조과학회 (creation.kr)

Wikimedia commonsJosephus
플라비우스 요세푸스의 조각

창세기의 분명한 의미에 대해서 타협하고 있는 사람들은 창세기의 문자적 해석(literal interpretation)은 현대의 발명품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대신하여, 과거의 대부분 주석가들은 오래된 연대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과는 반대로, 대다수의 주석가들은 창세기 1장의 날들을 보통의 날(24시간으로 된 하루)들이라고 해석했다. 더군다나, 오리겐(Origen)이나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e)과 같은 사람들조차 오래된 연대 사상을 신랄하게 공격하였고, 지구의 나이는 수천 년에 불과하다고 단언했었다.1 유대인 주석가들 중 1세기에 살았던 역사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Flavius Josephus, AD 37~약 100)는 여타 사람들 중에서 두드러졌다.

유대(Judea)에서 태어나서 성장기를 거기에서 보냈던 요세푸스는 의심의 여지없이 성경 밖의 인물들 중에서는 가장 중요한 역사가였다. 만일 요세푸스가 아니었다면, 유대 역사의 전체 기간이 세월의 뒤안길에서 잊혀졌을 것이다. 여느 선량한 유대인처럼, 요세푸스도 유대인들의 종교에 대한 우선적인 이해가 없다면, 유대인의 역사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성경이 유대교를 정의한 바와 같이, 요세푸스는 먼저 성경을 정의함으로써 유대교를 설명하였고, 그들의 거룩한 경전들에 대한 유대인들의 사랑을 설명하였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리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것처럼) 서로 불일치하고, 서로 모순 되는 셀 수 없이 많은 책들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과거 시대의 모든 기록들을 포함하고 있는 22권의 책들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들은 당연히 신성한 것으로 믿어지며2, 그들 중 5권은 모세가 기록한 것으로, 모세가 죽을 때까지의 인류 기원에 관한 전승들과 율법을 포함하고 있다. 이 기간은 3,000 년 보다 약간 짧은 기간이…예언서들…3권이 있다. 나머지 4권은 하나님에 대한 찬송과 인생들에 대한 교훈을 포함하고 있다”.3

늘 그렇듯이, 요세푸스는 문제의 핵심을 찌르고 있었다. 그의 분명한 단어들은 명확해서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가 없었다. 인류는 모세의 시대까지 단지 3,000년 정도 되었다고 그는 명백하게 언급하고 있었다. 그는 계속해서, 유대인들은 성경을 매우 신성하게 여겼기 때문에, 그 성경에 무엇을 더하거나 빼거나, 또는 성경의 신적 교리들 중 어떤 것이라도 바꾸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할 정도였다고 말하고 있었다.4

그의 가장 중요한 저술인 ‘유대 고대사’의 서문에서, 요세푸스는 성경에 대한 그의 해석을 더 깊이 설명하고 있었다. 왜 모세가 성경을 창조 기사로부터 시작했는지를 설명하면서, 요세푸스는 모세가 하나님께서 자기를 사랑하고 섬기는 자들을 축복하신다는 것을 인류에게 가르쳤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제 모세가 이 교훈을 그의 백성들에게 가르치기를 열망했을 때, 그는 다른 입법자들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계약이나 다른 권리들에 관하여 했던 것과 같은 방법으로 율법의 제정을 시작하지 않았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천지 창조를 존중하도록 인간의 마음을 고양시키고, 우리 인간들이 지상에 있는 하나님의 피조물들 가운데서 가장 우수하다는 것을 그들에게 설득함으로써 시작했다. 이제 그가 일단 그들을 신앙에 순복하도록 인도하였을 때, 그는 다른 모든 일에도 순복하도록 쉽게 설득할 수 있었다. 우리의 입법자는 어떤 일을 지혜롭지만 수수께끼 같이, 어떤 것들을 점잖은 풍유로 말하고 있지만5, 그러나 여전히 그러한 것들을 명백하고 확실하게 직접적으로 설명하고 있다.”6

요세푸스는 그의 방법론을 설명한 후, 창조에 대한 설명으로 들어간다. 그는 모세의 설명이 전적으로 문자적으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논평하고 있었다 : “이것은 정말로 첫째 날이었다7, 그리고 단지 6일 동안에 이 세계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만들어졌다”.8 요세푸스는 그가 이런 말들이 수수께끼 같다거나 우화적이라고 생각한다는 어떠한 지적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의 논평은 창세기에 기록된 모세의 말만큼이나 의미가 분명하였다.

요세푸스는 에덴동산에 이어, 아담의 타락과 아담에서 노아까지 10 세대를 기록하고 있었다.8 요세푸스는 위에서 모세와 아담 사이의 시간이 3,000년이라고 언급했던 바와 같이10, 아담에서 홍수까지 사이에 어떠한 시간적 간격도 허용하지 않았다.9 요세푸스는 대홍수에 관한(그는 물이 모든 곳을 덮었던 전 지구적 홍수로서 기록하고 있다11) 그의 글에서, 창세기 5장의 계보들 사이에 간격이 없음을 여러 번 확인하고 있었다.12

요세푸스는 그의 저술 전반에 걸쳐서, 그가 기록하고 있었던 핵심적인 입장과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었던 어떤 유대 분파들을 언급하고 있었다. 그는 사두개파, 바리새파, 에세네파, 그리고 열심당 사이의 교리 차이를 말하고 있었지만, 창세기 1–11장에 대한 이런 핵심적 해석에 대한 유대인들의 단 한 마디의 다른 의견도 기록하지 않고 있었다.13 만약 어떤 다른 의견이 있었다 할지라도, 요세푸스는 그 의미가 애매하지 않고 명백하였음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그에게 있어서 그것은 언급할만한 가치가 없었던 것이었다.

요세푸스는 히브리 성경을 설명하는 동안, 오늘날의 안티기독교인들이 말하고 있는 것과 똑같이 말하고 있었던 반유대주의자들과 직면했었다. 요세푸스의 시대에 이교적인 헬라 역사가들은 성경에 기록된 유대인의 역사를 부인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동일과정설적 과학자들은 성경에 기록된 역사를 부인하고 있고, 지구와 그 위에 살고 있는 생명체들의 진정한 역사를 부인하고 있다. 또한 요세푸스는 오늘날의 교회가 문자적 창세기의 반대자들(오직 세속적 과학만이 기원에 관한 진실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대응해야 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이들에 대해 대답하고 있었다 :

“무엇보다 나는 오로지 헬라인들의 주장에만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매우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고대의 역사들에 대해 알고 싶어질 때, 우리 자신의 것에서부터 그 진실을 살펴보아야만 한다. 우리 자신을 믿지 못한다면서, 다른 사람도 믿을 수 없는 것이다; …
“아니, 헬라의 역사가들은 자료들을 쉽게 수집할 수도 없었고, 그들이 기초할 수 있는 어떤 좋은 기록도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오히려 그들 자신의 추측으로부터 그들의 역사를 썼던 사람들이 아닌가? 그러므로 그들은 자신들의 목적에 따라 쓴 책들을 두고 서로 논박하고 있으며, 동일한 사건들에 대하여 매우 상충된 설명을 하고 있으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있다”.14

요세푸스의 저술들은 현대 교회가 창세기와 지구의 시작에 관한 성경의 기록에 강력히 서 있어야할 것을 격려하고 있다. 요세푸스는 예수님의 시대에 살았던 유대인들의 창세기에 대한 일관된 견해는 “창세기는 말하고 있는 그대로를 의미한다” 였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요세푸스는누구였는가?

Wikimedia commonsJosephusbust
요세푸스의 흉상.

요세푸스의 본명은 요세프 바르 마티아스(Joseph bar Matthias)였다. 그는 사두개인(Sadducee)으로 출생했고, 엣세네파(Essenes) 사람들의 친구였지만, 바리새인(Pharisee)으로서 훈련을 받았다. 요세푸스는 또한 예루살렘에서 외교 사절로서 로마에 가기도 하였고, 나중에 열심당 민병대(Zealot militia)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AD 66년의 유대 반란(Jewish Revolt) 동안에 그는 로마에 대항해서 갈릴리를 방어했다(실패로 끝났지만). 그는 AD 67년에 그의 주둔지에서 집단학살을 간신히 피했으나, 포로로 잡혀서 로마 베스파시아누스 장군에게 넘겨졌다. 요세푸스는 베스파시누스가 후에 황제가 될 것이라고 통찰력 있게 예언했다. 이런 일이 AD 69년에 실제로 일어났을 때, 베스파시누스는 요세푸스를 방면해 주었다. 저항운동이 희망 없음을 깨닫고, 요세푸스는 유대인들에게 예루살렘을 포기하라고 설득하려고 했다. 그래서 그는 매국노로 낙인 찍혔다. 그리고 예루살렘은 AD 70년 처참하게 점령되었다. 곧 베스파시아누스 황제는 요세푸스의 학식과 역사에 대한 통찰력을 인정하였다.

황제의 보호 아래, 요세푸스는 유대인의 역사에 관한 각각 여러 권들로 이루어진 두 권의 책을 출판했다. 즉 한 권은 ‘유대 전쟁사(Wars of the Jews)’ (약 BC 145년부터 AD 70년까지의 마카비 혁명(Maccabean revolt, 마카베오 독립전쟁)에서 예루살렘 함락까지 초점을 맞춘 책)이고 다른 한 권은 ‘유대 고대사(Antiquities of the Jews)’ (창조로부터 BC 145년까지를 망라하는 유대인의 성경, 전통, 민속에 관한 해설서)이다. AD 100년에 어느 시민의 후원으로, 그는 ‘아피온을 반박함(Against Apion)’과 ‘플라비우스 요세푸스의 삶(The Life of Flavius Josephus, 자서전)’을 출판했다.

처음 게시됨 ~에 홈페이지:2008년 5월 26일
다시 게시됨 ~에 홈페이지:2017년 9월 27일

참고 문헌및 메모

  1. This is thoroughly documented in Sarfati, J., Refuting Compromise, ch. 3, Master Books, Arkansas, USA, 2004, which includes sections on Josephus. 텍스트로돌아 가기.
  2. The Jewish canon contains the same books as the Protestant Old Testament, but they are numbered and grouped differently (for example, they counted all the minor prophets as one book—The Book of the Twelve). 텍스트로돌아 가기.
  3. Against Apion, 1.8, p. 776, emphasis added. All quotations from Josephus taken from Flavius Josephus, The Works of Josephus, Complete and Unabridged, translated by William Whiston, Hendrickson Publishers, Inc., Massachusetts, USA, 1987. These books are also available in the Online Bible. 텍스트로돌아 가기.
  4. Against Apion, 1.42. And many Jews have died rather than compromise Scripture and God’s commands. The Maccabean revolt started when one man and his five sons refused to let Hellenists sacrifice to Greek gods in the Jewish Temple. 텍스트로돌아 가기.
  5. Josephus uses ‘allegory’ as we would use ‘typology’. The difference is that typological events really happened and have a deeper, spiritual meaning underneath the literal one (you might think of it as the ‘preaching point’). By his own account, Josephus prefers the literal over any figurative meaning and uses ‘allegory’ exactly as Paul does in Galatians 4:24. 텍스트로돌아 가기.
  6. Antiquities Preface, 4. 텍스트로돌아 가기.
  7. Antiquities 1.1.1, emphasis added. 텍스트로돌아 가기.
  8. Antiquities 1.3.2, emphasis added. 텍스트로돌아 가기.
  9. The Flood occurred 2,656 years after Creation in most copies of Antiquities 1.3.3. This agrees with the Greek Septuagint translation (ca. 250 BC), while our English Bibles are mainly translated from the standard Hebrew (Masoretic) text, which says 1,656 (see also Hansen, P., Real History: The Timeline of the Bible, Creation 27(4):28–29, 2005). Dr Pete Williams shows why the Masoretic Text is likely to be closer to the original Hebrew in ‘Some remarks preliminary to a Biblical chronology’, Journal of Creation 12(1):98–106, 1998; creation.com/chronology.
    It is possible that Josephus couldn’t find a Hebrew manuscript in the heart of the Empire, or else later scribes changed Josephus’ Hebrew numbers to conform to the Septuagint. Indeed, a few very old manuscripts of Josephus agree with the later Masoretic text. Those manuscripts report 1_56 years between Creation and the Flood (the centuries marker is smudged beyond recognition). 텍스트로돌아 가기.
  10. Indeed, the book’s heading is, ‘Containing the interval of three thousand eight hundred and thirty-three years: From the Creation to the death of Isaac.’ Once again, the expanded figures are due to Septuagint numbers, but the point is still that there is no room for millions of years since creation. 텍스트로돌아 가기.
  11. Antiquities 1.3.5. 텍스트로돌아 가기.
  12. Antiquities 1.3.3–4. 텍스트로돌아 가기.
  13. The groups themselves record some few differences amongst individual members, but the vast majority follow the literal interpretation of 레위기 1–11 텍스트로돌아 가기.
  14. Against Apion 1.2, 3. 텍스트로돌아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