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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와 `하얀 침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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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킹즐리 (1819–1875)

저자:
번역자: 한국어창조과학회 (creation.or.kr)

찰스 킹즐리(Charles Kingsley)는 한때 일부 아일랜드인들을 ‘하얀 침팬지(white chimpanzees)’로 기술했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심을 받은’ (창세기 1:27) 남자와 여자들에 대하여 이런 말을 한 찰스 킹즐리는 누구이며 왜 그랬을까?

진화론을 위한 포교자

19 세기 영국의 성공회 신부 찰스 킹즐리(1819–1875)는 작가인 동시에, 아마추어 자연주의자이며 역사가였다. 오늘날의 기성세대는 아마도 그를 그의 어린이들을 위한 책 ‘물의 아이들(Water Babies, ‘퇴화되어가는 진화’를 묘사한 이상한 작품)‘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주인공인 톰(Tom)은 아가미를 가진 양서류가 되어서 물에서 살아가고 있는 인간 어린이이다.

1859 년에, 킹즐리는 챨스 다윈의 ‘종의 기원’에 매료되어 다윈에게 다음과 같은 칭찬의 편지를 썼다 : “… 만약 당신이 옳다면 나는 내가 믿어왔던 그리고 집필하였던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만 합니다”. 그리고는 “이제 하나님이 각 생물체들을 종류대로 창조하셨다는 강요되는 ‘미신’으로부터 자유로워졌습니다” 라고 말하고 있다.1 다윈은 진화론에 대한 견해를 강화하기 위해 저명한 성직자의 지지를 구하고 있었는데, 즉각 1860년도에 그의 ‘종의 기원’ 제 2판의 마지막 장에 킹즐리의 편지 내용 일부를 인용했다.2,3

진화론적 개념은 킹즐리의 시대에 영국에서 라마르크(Jean-Baptiste Lamarck), 조지 큐비에(Georges Cuvier), 에라스므스 다윈(Erasmus Darwin, 찰스 다윈의 할아버지)을 포함해서 많은 근원들부터 출현하고 있는 중이었다. 실제로 에라스므스 다윈의 저서 ‘주노미아(Zoonomia, 1794)’는 그보다 더 유명해진 손자 찰스 다윈에게 상당히 영향을 주었다.4 많은 빅토리아 시대의 사람들은 진화론이 노예제도와 인종적 차별을 정당화한다라고 믿었다. 그리고 골상학과 같은 새로운 사이비 과학은 인간의 두개골과 턱의 구조는 어느 종족들이 다른 어느 종족들보다 열등한지를 보여준다고 가르쳤다.5 이러한 상황 하에서 켈트(Celts) 종족이었던 아일랜드 사람들은 빅토리아 시대의 진화론자들에 의해서 그들보다 ‘상위’로 주장된 앵글로색슨 종족보다 낮은 단계의 진화 형태로 단정되었다. 따라서, ‘원숭이 같은 켈트 사람들(the ape-like Celt)’ 이란 표현은 빅토리아시대 인종차별의 ‘상투적 어구’가 되어 버렸다.6 

감자 요인

아일랜드의 감자 대기근(great Irish potato famine)은 킹즐리의 의견에 대한 배경을 제공하고 있다. 1500년대 말 스페인 사람들에 의해 남아메리카로부터 유럽으로 소개된 이후로 감자(potato)는 1800년대 초에, 대략 300만명의 아일랜드 농부들의 주식량이 되었다. 감자는 영양가가 높고, 쉽게 자라며, 다른 어느 농작물보다 1 에이커의 땅에서 더 많은 칼로리를 생산해냈다.

특히 소위 ‘럼퍼(‘lumper)’ 라고 불리는 어떤 감자 종은 다른 어떤 종의 감자보다 더 높은 수확을 거두게 했다. 아일랜드의 소작농부들은 실제로 산출량이 높은 이 ‘럼퍼’ 감자만을 경작하게 되었고,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각 가정의 경작지는 더 작은 부지로 분할되어졌다. 따라서 대부분의 가정들은 1 에이커 미만의 땅에 의존하여 생존해야만 했다.

그런데, 1845년에 재앙이 들이닥쳤다. ‘감자 마름병(Late Potato Blight)’ 이라는 질병을 일으키는 곰팡이인 Phytophthora infestans가 북아메리카로부터 우연히 도입되었고, 이로 인해 아일랜드의 전체 감자 생산량의 40%가 줄어들게 되었다. 다른 야채와 여러 가지 곡물들은 면역성이 있어서 풍부하게 소출되었지만, 그것들 모두는 지주들의 소유였다. 1846년에, 농부들은 그들에게 남은 감자를 심었지만, 그 감자들의 일부는 동면상태에서 이미 곰팡이에 감염된 상태였다. 비가 오자 마름병이 재발되었고, 그해 감자 생산은 완전히 망해버렸다. 사람들은 남겨두었던 씨감자들을 먹어버렸고, 1847년에는 심을 감자가 없어 먹을 것이 없게 되었다.

아무 것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1846 년에 아일랜드에서는 모든 국민들이 먹을만큼의 충분한 밀, 보리, 귀리, 돼지, 계란과 버터가 생산되었다. 그러나 이것들은 임대료를 지불하기 위해 사용되거나, 무일푼의 사람들이 사 먹기에는 너무 비싼 것이었다. 임대료를 지불할 수 없었던 임차인(그 기간중 거의 50만명의 사람들)들이 거리로 쫓겨나야만 했다. 죽음과 질병은 거의 모든 가정에 다가왔다. 많은 사람들이 시골에서 구걸하며 방황하였다. 800만 명의 인구중에서, 대략 100만 명의 사람들이 굶어 죽었고, 약 150만 명의 사람들이 재앙적인 마름병으로 인해 피난민이 되어 주로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7 이미 영양실조에 걸린 승객들의 절반이 항해도중 사망하였기 때문에, 그 당시의 나무배들을 ‘관이 된 배(coffin ships)’라고 불렀다.

회복은 길고 어려운 과정이었다. 1860년, 찰스 킹즐리는 아일랜드를 방문했다. 그의 아내에게 쓴 편지속에서 그는 상당히 뒤 늦은 기간이었지만 목격했던 이재민들에 관해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었다. “그 끔직한 나라에서 몇 백마일을 지나가면서 나는 인간 침팬지들의 출몰에 의해서 괴롭힘을 당하고 있습니다. … 하얀 침팬지들을 보는 것은 정말 무서운 일입니다. 만일 그들이 검은 색이라면 별로 무섭지 않았을텐데, 햇볕에 그을린 곳을 빼곤 그들의 피부는 우리와 같은 하얀색입니다.”8

킹즐리의 이러한 글은 그 당시의 진보적 사고의 산물이었고, 그의 사고 방식은 그가 분명히 진화론자(evolutionist)이며 인종 차별주의자(racist) 였음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기술했던 비극은 인류의 진화론적 관점을 지지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그는 아일랜드의 이민자들 중에 미국의 35대 대통령인 존 에프 케네디(John F. Kennedy)의 조상이 있었다는 것을 몰랐다! 아일랜드 사람에 대한 킹즐리의 슬픈 태도는 잘못된 진화 교리가 한 사람의 생각을 망쳐놓을 수 있는지를(아담과 이브의 후손들인 오늘날의 주변 사람들을 침팬지와 같은 존재로 인식해 버릴 정도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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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교회탑이 보이는 찰스 킹즐리의 교구 사제관. 1905년 9월 14일 에버슬리(Eversley).

선택과 진화

아일랜드 감자 마름병의 비극은 창조론자들에게는 오랫동안 진화적 사고의 오류를 나타내는 유용한 설명이 되어 왔다. 즉 강조되어지는 것은, 선택이 심지어 농작물을 ‘개량(improves)’ 하더라도 실제로는 정보의 총량(total amount of information, 유전적 다양성)은 줄어든다는 것이다.

어떤 특성을 강화시키기 위한 선택적인 육종(selective breeding)은 오랫동안 농가에서 실행되어왔다. 다윈은 그의 책 ‘종의 기원’에서 이 방법으로 인공번식(artificial breeding)을 지적했다. 그는 선택이 좋은 방향으로의 개선을 이루어서 종국적으로는 완전히 새로운 생물체가 출현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이라는 관점에서 이 인공번식(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이 방법을 쓰는데)을 보았다. 그러나, 그는 선택을 통하여 한 가지 특성을 강화시키는 것이 다른 특성들의 희생을 가져오리라는 것을 몰랐다. 선택이 어떤 새로운 정보도 만들어 낼 수 없고, 단지 거기에 있는 것으로부터 단순히 ‘가려 뽑은’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논리적이다. 이러한 선택을 통해 다양함이 더욱더 특수화가 된다면, 선조들이 가지고 있었던 유전적 풍성함의 일부를 잃게 되는 것이다. 이 점이 현재 세계 농업 관계자들이 우리 식용작물들의 선조 ‘야생종(wild types)’들을 보존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는 이유이다.9

아일랜드 감자의 조상뻘되는 남미 야생종들 중에는 마름병 곰팡이에 저항하는 유전자를 지니고 있는 종들이 있다. 이들로부터 특수화된 아일랜드의 자손 종들은 이러한 ‘저항’의 유전정보를 잃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선택은 한편으로는 더 좋은 감자를 만들었지만, 아일랜드의 고통에서 확실히 본 것처럼 전반적으로는 퇴행적인 변화(downhill change) 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아일랜드의 고통으로 뚜렷하게 설명되어진다. 정보를 잃는다는 것(losing information)은 아메바에서 사람으로 되기위해 필요한 일(정보의 양을 늘리는 일)과는 정반대의 과정이다.

진화론적 신화로 영감을 받았다는 킹즐리의 해석이 과학적으로 의심받고있는 현상에 의해서 촉발되었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참고 문헌및 메모

  1. The Life and Letters of Charles Darwin, D. Appleton and Co., London, 2:81–82, 1911. 텍스트로돌아 가기.
  2. Darwin, C., On theOrigin of Species, 2nd edition, John Murray, London, chapter 15, 1860. 텍스트로돌아 가기.
  3. See Grigg, R., 다윈의 퀴슬링, Creation 22(1):50–51, 1999. 텍스트로돌아 가기.
  4. See Grigg, R., 다윈 사상, 모든 게 그 집안 내력이다, Creation 26(1):16–18, 2003; and Grigg, R., 다윈의 불법적인 발명품, Creation 26(2):39–41, 2004. 텍스트로돌아 가기.
  5. Some claimed that the ‘white races’ were descended from Adam and Eve but that God had created the non-whites separately (polygenesis). See Grigg, R., Were there human beings on Earth before Adam? Creation 24(4):42–45, 2002. 텍스트로돌아 가기.
  6. Wohl, Anthony (Prof. of History at Vassar College), Racism and anti-Irish prejudice in Victorian England, www.victorianweb.org/history/race/Racism.html, 22 January 2004. 텍스트로돌아 가기.
  7. Encyclopaedia Britannica 17:387, 1992. 텍스트로돌아 가기.
  8. Curtis, L.P. Jr., Anglo-Saxons and Celts, Univ. of Bridgeport, Connecticut, USA, p. 84, 1968. 텍스트로돌아 가기.
  9. Batten, D., 뭐! ...감자가 아니라고? Creation 21(1):12–14, 1998. 텍스트로돌아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