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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말타의 동굴인들 : 현대인들도 최근까지 동굴에서 거주하고 있었다

동굴, 아름다운 내집 동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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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집 만한 곳이 없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가르 일크비르 동굴의 거주자들에게도 해당하는 말이었다. 외국인들은 그들의 동굴생활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

”그들은 동굴생활에 철저히 얽매여 있었는데, 그들이 멜리타(Melita) 라는 도시로 가서 그들의 상품을 팔거나 생필품을 살 때는, 마치 추방 명령을 받은 사람들처럼 볼일도 가능한 빨리 끝냈으며, 하루 밤도 밖에서 보내지 않기 위해 서둘러 돌아가곤 했다” - Kircher, 1637.1

”…이들 말타의 동굴인들은… 마치 그들 자신들을 살아있는 채로 땅에 묻어 버린 듯이, 땅 위의 집들에 나와 사는 것보다 어둡고 외딴 동굴에 사는 것을 택하였다.” - Veryard, 1701.2

현대 동굴 거주자들의 발견은 우리들에게 놀라운 사실이 아니다. 그러나 진화론적 생각은 동굴 거주자를 원시인으로 여기도록 세뇌시키고 있다. 증거들은 스스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해석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만일 기독교인들이 성서에 근거한 안목으로 동굴 거주자들을 바라본다면, 노아의 후손들은 머리가 나쁜 짐승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편의 또는 취향에 의해 동굴에서 살기로 선택했다는 것을 깨달아야만 한다.

참고 문헌및 메모

  1. Zammit Ciantar, J., Life at Ghar il-Kbir, Dingli Local Council, Malta, p. 11, 2000.
  2. Veryard, E., An Account of Divers Choice Remarks, as well Geographical, as Historical, Political, Mathematical, Physical, and Moral; taken in a Journey through the Low-Countries, France, Italy, and Part of Spain; with the isles of Sicily and Malta, Sam Farley, London, pp. 233–236, 1701.

저자: and
번역자: 한국어창조과학회 (creation.or.kr)

진화론자들의 주장은 많은 이들에게 ‘태초의 원시 인류들’은 ‘동굴생활’을 한 것으로 생각하게 한다. 그러나 최근 확인된 증거들에 의하면, 그러한 생각은 논리적이지 않음이 밝혀졌다.

당신은 ‘동굴인(cavemen, 혈거인)’들을 믿고 있는가? 회의론자(sceptics)들은 이런 질문들을 받으면 ”그렇지!” 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들은 성경에서 아담의 후예들이 거대 도시들을 건축했다는 것을 언급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증거들‘은 확실히 초기 인류들이 동굴에서 생활했음을 보여준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만약 ‘동굴인’들이 동굴에 사는 사람들만을 의미한다면, 우리도 ‘물론 동굴인이 있었다는 것을 믿는다’ 고 대답할 수 있다. 오팔 광산이 있는 호주 남부의 도시 쿠버 페디(Coober Pedy)를 방문하면, 그곳의 날씨가 너무 더워서 일부 광부들은 땅속 집에 살고 있음을 보게 된다. 실제로 ‘동굴인들’이 텔레비전과 함께 살고 있다!

우리가 그 질문에 대답을 했지만, 그러나 그 질문은 실제로는 동굴에 사는 사람에 관한 것이 전혀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책과 박물관에서 자주 묘사되고 있는 털이 많고 동굴에 거주하는 ‘유인원(apemen)’에 관한 것이다. 사람들은 그들 자신의 진화론적 믿음에 의거하여 한 때 동굴에서 살았던 인간이 원시적인 짐승이었다라고 가정한다. 그러나 이것은 증거로부터 결론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진화론적 상황에 의한 하나의 결과인 것이다. 심지어 네안데르탈인들이 살았던 동굴들도 그들은 기술을 가진 인류였으며, 심지어 재능있는 음악가였다는 명백한 증거들을 보여주고 있다.

성경은 많은 동굴인(cavemen)들을 언급하고 있다. 창세기에 의하면 롯(Lot)도 한때 혈거인(그가 소돔으로부터 도망치고 난 후에)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윗도 사울 왕으로부터 달아나 동굴에서 살았으며, 오바댜는 동굴에 100명의 선지자들을 숨겨주었고, 그들에게 빵과 물을 주었으며 이세벨로부터 그들을 구했다. 미디안(Midianites)을 벗어나기 위해 이스라엘인들도 일시적으로 동굴에서 살았다. 엘리야 자신도 한 동굴에서 지냈으며, 심지어 욥도 동굴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말하고 있다 (욥기 30:6).

성서적 역사의 관점으로 볼 때, 사람들이 바벨에서 언어의 혼란 이후 흩어짐에 따라, 그들은 여러 곳에서 다양한 주거의 형태를 가졌는데(어떤 것은 일시적이고, 어떤 것은 영구적이었는데), 예를 들면, 천막, 진흙집, 돌집, 또는 나무집 등이었고, 많은 사람들은 확실히 동굴에서 거주하였을 것이다. (노아의 홍수 이후 물이 빠져나가면서, 아마도 많은 동굴들이 형성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아래의 석회암 동굴들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참조). 따라서 전 세계에 걸쳐서 사람들이 동굴들에서 살았다는 증거들이 발견될 것이 예측된다.

한 흥미로운 예를 지중해에 있는 시실리(Sicily) 남쪽의 말타 섬(island of Malta)에서 찾을 수 있다.

지중해 사람들은 항상 편리하면서도 시원한 거주 장소로서 동굴과 바위동굴들을 선호했다. 말타도 예외는 아니었다. 동굴생활의 전통은 고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동굴에서의 거주, 또는 혈거(troglodytism)는 중세 동안에 아주 인기 있는 주거방식이었다는 강한 고고학적, 문서적 증거들이 있다. 진 퀸틴(Jean Quintin d’Autun)이 1536년에 그 섬에 대해 기록하였을 때1, 그는 말타에서는 동굴(cave)에 거주하는 이들이 아주 많았으며, 일부 사람들은 매우 최근까지도 동굴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에 매우 놀라워했다. 이러한 동굴 정착자들의 여러 후손들이 아직도 존재하고 있으며, 심지어 동굴 교회(cave churches)들까지 있었다.

거대한 동굴

가르 일크비르(Ghar il-Kbir, the Great Cave) 동굴은 이들 정착지 중에서 가장 잘 알려져 있다.2,3,4,5,6 그것은 2개의 다른 높이에 8개의 작은 동굴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하나의 커다란 자연 동굴로 둘러싸여 있다. 동굴의 지붕(‘텅빈 카르스트(karst hollow)’라고 불리는)은 무너져있다. 동굴거주자들은 더 작은 동굴들에 살았는데, 내부에는 돌로 벽을 만들어 (물론 입구도) 거실과 구분했다. 다른 장소에서 발견된 것처럼 벽화의 흔적은 없으나 돌로 여러 가지 작품들을 남겼다 - 천정의 고리, 도관(ducts), 선반(shelves), 그리고 벽감(niches, 벽의 움푹 들어간 곳)들인데, 이들은 확실히 실용적인 용도로 쓰였다.

가르 일크비르 동굴의 가장 오래된 정착 년도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처음 알려진 것은 1544년으로, Simone Camilleri de gar il-chibir (‘큰 동굴의 Simone Camilleri’)라는 글의 참고문헌으로 알려졌다. 말타의 역사가인 프란세스코 아벨라(Giovanni Francesco Abela)는 그 섬에서 사람들이 사는 거주 장소의 목록에 그 가르 일크비르 동굴을 포함시켰다. 그는 그곳에 27가구의 117명의 사람들이 살았던 거대한 동굴로 표현하고 있었다.7 그들은 목동과 양치는 사람(pastori e pecorai)들이었다.

가르 일크비르 동굴의 생활을 가장 극적으로 기술한 사람은 독일의 학자 키쳐(Athanasius Kircher, 1602~1680)로서, 그의 두터운 책 ‘Mundus Subterraneus’ (라 틴어로 ‘지구 아래의 세계’)에서 였다.8 그가 그 장소를 방문했을 때, 크고 강한 체구에 간단한 옷차림을 한 어른과 아이들이 그에게 인사를 하였다. 그는 또한 그곳의 여인들의 아름다움에 주목했는데, 이것은 어린이들의 책에 그려져 있는 짐승같이 추하게 생긴 여인들과는 매우 대조적이었다.

그곳 사람들은 채식주의자들로 야채, 치즈, 집에서 구운 빵을 주식으로 하였으며, 소들의 분변을 말려 연료로 사용하였다. 남자들은 들에서 일하였고, 가축들을 길렀으며, 그것들을 도시로 내다팔았다. 여인들은 아이들을 돌보고 치즈를 만들었다. 식수는 흙으로 빚은 커다란 용기에 보관되어 있었다. 동굴은 비와 바람을 내보내도록 고안된 창을 통해 환기가 되고 있었다. 동굴의 거주자들은 십자가와 성화 등으로 동굴을 장식하고 있었다.

그곳을 직접 방문한 여행객의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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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18th-century print shown here, engraved by Peter van der Aa, depicts a scene of everyday life in the settlement.

가르 일크비르 동굴은 그 당시에 여행자들 사이에서 미니 관광 명소가 되어 있었다. 동굴에서 실제 살고 있는 사회를 방문하는 것을 상상해 보라. 독일인 방문자였던 키쳐(Athanasius Kircher)가 기록한 설명은 가장 생생하였다.

”1637년에, 내가 말타(Malta)를 방문했을 때, 근처에는 한 언덕이 있었는데, 그곳에서는 사람들이 땅속에서 살고 있었다. 초대했던 사람은 내가 그곳에 가서 그들이 그 동굴을 장식해 놓은 예술적인 감각과 어떻게 그들이 살고 있는 장소를 꾸며 놓았는지를 보기를 원하였다.....”

”그들은 정말로 잘 조직된 방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곳에서 그들은 단단한 암석을 파내어 만든 침대를 가지고 있었다. 벽에는 하나의 벽 찬장을 가지고 있었고, 그곳에 빵과 치즈 등을 올려놓고 있었다. 다른 장소에, 그들은 소, 양, 당나귀들을 위한 우리(pens)를 가지고 있었고, 일부 닭들을 위한 우리도 가지고 있었다. 저수조를 대신하는 항아리들은 충분히 커서 물을 보관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양파와 마늘은 꽃줄(festoons)처럼 다발로 묶여져서 매달려 있었고, 벽을 장식하고 있었다.”

”그곳에는 또한 빵을 굽기 위한 오븐이 있었다.... 오븐도 또한 굴뚝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연기는 동굴 안으로 퍼졌을 것이고 …사람들은 숨이 막혔을 것이다.”1

인구수는 점차적으로 감소하였다. 그러나 일부 거주자들은 19세기 초까지도 남아 있었다. 떠도는 이야기에 의하면, 영국 식민지 정부가 1830년대에 마지막 거주민들을 강제로 내쫓았고, 그들을 근처 마을로 이주시켰다고 한다.

딩글리(Dingli)의 근처 마을에 있는 교회 기록에는 가르 일크비르 동굴에 살았던 사람들에 대한 개인적인 상세한 기록들이 남아있다.2 예를 들면, 1699년에 프랑코 벨라(Franco Vella)라고 불리는 53세의 남자는 38세의 아내 필루메나(Filumena)와 3명의 아이들과 그곳 동굴에서 살았다고 되어있다.

분명히, 이들 동굴 거주자들은 근처의 마을 사람과 상호 교류를 했던 정상적인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귀족과 부자들은 궁궐 같은 집에서 사는 동안, 가난한 대중들은 돌집이나 동굴에서 살았다. 이들 동굴의 주거 상황은 근처 베르다라 궁전(Verdala Palace)의 건축학적 아름다움과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뜨거운 여름 동안에 동굴들은 섬의 어느 곳보다도 확실히 안락했을 것이다.

참고 문헌및 메모

  1. Zammit Ciantar, J., Life at Ghar il-Kbir, Dingli Local Council, Malta, pp. 8–10, 2000.
  2. Buhagiar, K., The Ghar il-Kbir Settlement and the Cave Dwelling Phenomenon in Malta, B.A. (Archaeology) thesis, University of Malta, 1997, Appendix 1, pp. 31–34.

참고 문헌및 메모

  1. Quintin d’Autun, J., Insulae Melitae Descriptio, Lyons, France, 1536. 텍스트로돌아 가기.
  2. Zammit Ciantar, J., Life at Ghar il-Kbir, Dingli Local Council, Malta, 2000. 텍스트로돌아 가기.
  3. Wettinger, G., The lost villages and hamlets of Malta, in: Luttrell, A. (Ed.), Medieval Malta, London, p. 188, n. 24, 1975. 텍스트로돌아 가기.
  4. Messina, A., Trogloditisma Medievale a Malta, Melita Historica, Malta Historical Society 10(2):109–120, 1989. 텍스트로돌아 가기.
  5. Buhagiar, K., The Ghar il-Kbir Settlement and the Cave Dwelling Phenomenon in Malta, B.A. (Archaeology) thesis, University of Malta, chapter 2, pp. 19–23, 1997. 텍스트로돌아 가기.
  6. Luttrell, A., Malta Troglodytica: Ghar il-Kbir, Heritage (publisher: Midsea Books, Malta) 24:461–464, 1979. 텍스트로돌아 가기.
  7. Abela, G.F., Della Descrittione di Malta, Isola nel Mare Siciliano, Bonacota, Malta, pp. 79–80, 1647. 텍스트로돌아 가기.
  8. A photocopy of pp. 97–99 in volume II of the original 1665 Latin text of Kircher, A., Mundus Subterraneus, can be found in Hein, O. and Mader, R., Athanasius Kircher S.J., in Malta, Akademie Verlag Berlin, pp. 139–141, 1997. 텍스트로돌아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