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plore
Also Available in:

20세기의 유명했던 무신론자, 안토니 플루의 전향 이야기

악명 높았던 무신론자가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했던 이유는?

가장 악명 높은 무신론자였던 안토니 플루(Antony Flew)가 로이 바기스(Roy Abraham Varghese)와 함께 저술한 책 <신(神)은 존재한다(There is a God)>로부터, 자신의 신조를 바꾼 이야기를 알아본다.

저자 :
번역 : 홍기범 (creation.kr)

7161there-is-a-god

무신론자들은 기독교 신앙이 본질적으로 비합리적임을 밝히기 위해, 그리스도인임을 공언했다가 신앙을 버리고 무신론자가 된 사람의 선언을 자주 사용한다. 즉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했지만, 논리적 사고(思考) 능력을 갖춘 후에는, 이성을 사용하여, 모든 종교적 미혹에서 벗어나게 되었다는 식의 주장이다. 물론 그들은 무신론자였던 사람이 크리스천으로 전향했던 수많은 이야기들은 무시하거나 폐기해버린다. 20세기에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던, 무신론 철학자였던 안토니 플루(1923-2010)가 무신론을 거부한 사건은, 쉽게 무시해버리기 어려운 사건으로서, 무신론자들에게는 악몽이었다. 플루는 자신의 전향에 대한 여정을 <신은 존재한다>라는 책을 통해 밝혔다.

그리스도인에서 무신론자로

플루는 자신이 어떻게 무신론자가 되었는지를 먼저 밝힌 후에, 무신론을 버린 이야기를 시작한다. 감리교 목사의 아들이었던 플루는 헌신적이고 성실한 그리스도인으로 학교를 다녔지만(10쪽), 공부를 해나가는 동안 자신의 신앙에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악(惡; evil)의 문제로 인하여 플루는 전능(全能)하신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너무 성급하고 너무 안일하게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으며, 후에 그것이 논리적으로 옳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인정하기는 했지만(10~11쪽), 플루는 15세가 되었을 때, 스스로 무신론자로 행세했다.(15쪽).

영향력 있는 무신론자로서의 활동

researchintelligentdesign.org 촬영7161Antony-Flew
.가장 큰 영향력을 가졌던, 20세기의 무신론 사상가 안토니 플루가 2004년에 신의 실재를 인정한다고 선언했다.

안토니 플루가 20세기에 가장 큰 영향력을 가졌던 무신론 사상가가 아니었다면, 플루가 무신론을 배격한 것이 무신론자들에게 별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옥스퍼드에서 안토니 플루는 (C. S. 루이스가 10년 넘게 회장으로 있던, 무신론자들과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논쟁을 위한 포럼인) ‘소크라테스 클럽(Socratic Club)’의 주요 멤버였다. 거기서 그는 ‘신학과 위조(Theology and Falsification)’라는 논문을 발표했는데, 본질적으로 텅 빈 수준의 신학적 진술(theological statements)들이 너무 많다고 주장하는 논문이었다(43~44쪽).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종교적 신념을 나타내는 진술들이 의미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나는 종교적 신념자들에게 그들의 진술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특히 서로 모순이 되는 경우에 대해 설명해보라고 도전하는 것이다”(45쪽). 1950년에 쓴 이 논문은, 발표 된지 수 십 년 후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47쪽).

1961년에 플루는 무신론을 주장하는 두 번째 책 <신과 철학(God and Philosophy)>을 출판했는데, 기독교 유신론의 근거를 찾아보려는 시도였다. 플루는 체계적으로 무신론을 주장하면서, 신의 존재에 대한 설계론적, 우주론적, 도덕적 주장은 무효라고 주장했으며(49쪽), 신의 존재에 대한 논쟁을 하려면, 먼저 신에 대한 개념을 제대로 정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신과 철학>이 역사적 유물(historical relic)이 되었으며(52쪽), 자신의 최근의 책 <신은 존재한다>에서 신의 존재에 대한 유효한 증거로서 설계론적, 우주론적 주장을 하고 있었다.

1971년 플루는 <무신론의 전제(The Presumption of Atheism)>을 출판했다. 무신론을 다룬 마지막 책인 그 책에서, ”합리적 관점으로써, 신의 존재에 관한 어떤 논쟁에서도 우선적으로 무신론이 전제되어야 하며, 그 증명은 유신론자가 감당해야한다”고 주장했다(53쪽). 그는 이 주장에 대한 가장 현명한 반박은 기독교 논리학자 알빈 플란팅가(Alvin Plantinga; 1932~)가 했다고 썼다. 그는 ”무신론의 전제는 기껏해야 방법론적 출발점이며, 존재론적 결론은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무신론의 전제는 하나님을 믿는 타당한 근거를 가진 유신론자에 의해서도 수용될 수 있는 것이라고 분명히 말한다.(56쪽).

사실, 무신론은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수많은 명제들로 가득 차 있다. 예를 들면, 우주가 무(無)로부터 왔다든가, 무생물인 물질들이 확률적으로 불가능한 화학반응들을 거쳐 살아있는 세포가 되었다든가, 복잡하고 막대한 량의 유전정보가 지성(intelligence)의 개입 없이 우연히 저절로 출현했다든가, 도덕성이 자연선택에 의해서 출현했다거나 하는 것들이다.

무신론에서 유신론으로

플루는 그 후 수십 년 동안 다른 철학 영역에 집중했으며, 사람들과 논쟁하는 경우에서만 자신의 이전 연구 결과에 근거를 둔 무신론 주제로 돌아왔었다. 그는 유신론자들과 신사적으로 논쟁을 했으며, 그 모든 논쟁 중에서 신학자 겸 철학자인 게리 하버마스(Gary Habermas)와 했던 (예수 그리스도가 죽음 자체를 정복했다는(부활) 명제에 대한) 논쟁이 가장 중요한 논쟁으로 알려져 있다1. 이 논쟁은 달라스에서 3,000명의 군중 앞에서 이루어졌는데, 미국 일류 대학교의 전문가로 구성된 두 그룹의 심사위원들이 판정했다. 철학자 5명으로 구성된 심사위원 그룹은 논쟁의 내용을 심사하라는 요청을 받았으며, 논쟁 전문 심사위원 5명으로 구성된 심사위원들은 논증의 질을 심사하라는 요청을 받았다.

철학자 심사위원들 5명 중 4명이 하버마스가 승리했다고 손을 들어 주었다. 말하자면 부활에 대한 하버마스의 진술이 그것을 반박하는 플루의 시도보다 강력했다는 것이며, 그리고 한 사람은 동점(同點)을 부여했다. 논쟁 전문 심사위원들은 3 대 2로 하버마스의 손을 들어주었다.

2004년에 뉴욕 대학교에서 있었던 가장 최근의 논쟁에서 플루는 ”나는 이제 신의 존재를 수용한다”고 선언했다.(74쪽). 플루는 그 논쟁에서 생명의 기원이 창조적 지성의 증거임을 믿는다고 말했다.

”순전히 DNA에 대한 연구 덕분이다. 내가 생각하는 DNA의 역할은, 생명을 창출하는데 필요한 장치들을 불가사의할 정도로 복잡하고 정교하게 배치하고, 엄청나게 다양한 부품들이 협력하여 일하도록 하는 데는 틀림없이 지성이 관련되어 있음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것은 부품들의 수적인 복잡성과 그 부품들이 협동하여 일을 하는 방법적 정밀성을 말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가 우연히 딱 맞는 시점에 모두 생겨나서 우연히 작동되었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그것은 전적으로 임무를 성취하는 데 필요한 엄청난 복잡성의 문제이며, 내게는 그것이 지적존재(知的存在)의 작품으로 보인다.”(75쪽)
7161DNA
.복잡한 유전자 코드는 플루로 하여금 생명의 기원에 창조적 지성(creative intelligence)이 필요하다는 것을 믿도록 했다.

플루는 특히 원숭이가 타자를 치다보면, 언젠가는 셰익스피어의 14행 시를 쓰게 될 것이라는 아이디어에 대한 물리학자의 반박에 감명을 받았다. 우연히 셰익스피어의 14행 시를 하나 얻을 확률은 1/10^690에 불과한 극히 극히 극히 낮은 확률이다. 우주에 존재하는 입자의 수가 10^80개뿐임을 고려하면, 그 확률이 얼마나 낮은 것인지를 알 수 있다. 플루는 결론적으로 말했다.

”한편의 14행 시에 대해서도 작동되지 않는 이론이라면, 생명의 기원과 같은 훨씬 더 정교한 작업이 우연히 성취될 수 있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정말 터무니없는 이야기다.”(78쪽).

플루는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selfish gene)’ 이론을 비판했다. ”자연선택은 능동적으로 무엇인가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오직 제거하거나 또는 제거 경향이 있을 뿐이다. 어찌 되었든 유전자들은 경쟁적이지 않다.”(78쪽). 플루는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통속적 신화에 불과한 주요 작업’이라 부르며, 도킨스는 생명체에서 관찰되는 대부분의 특성들이 많은 유전자 암호들에 대한 결과라는 사실을 간과하는 심각한 실수를 저질렀다고 주장했다.(79쪽).

설계자의 지문

신의 존재에 대한 플루의 믿음은 자연의 세 가지 측면을 근거로 하고 있었다. 첫 번째는 자연이 법칙을 따르고 있다는 사실이고, 두 번째는 생명체의 규모이다…. 세 번째는 자연의 존재, 그 자체라는 것이다.(89쪽).

자연의 법칙들

모든 과학자들은 자연을 예측할 수 있고, 계측할 수 있는 방법으로 작동된다고 가정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과학적 발견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폴 데이비스(Paul Davies)는 ”과학자가 기본적으로 신학적 세계관을 수용한 경우에만 과학이 발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107쪽). 그러나 자연이 법칙들을 따라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며, 그러한 법칙들의 존재는 설명을 필요로 한다. 다음의 세 가지 질문에 답해야 한다. ”물리학의 법칙들은 어디에서 왔는가? 다른 법칙들이 아닌, 우리가 알고 있는 법칙들이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평범한 기체들이 생명체로, 의식으로, 지성으로 바꾸어졌던 일련의 법칙들은 어디서 왔는가?”(108쪽). 다른 많은 고전물리학자들과 현대물리학자들과 함께, 플루는 유신론(有神論)이야말로 유일하고 진지한 대답이라고 주장한다.

플루가 무신론자(無神論者)였을 때, 우주와 그 법칙들은 그 자체로 완전하다고 주장했었다.(134쪽). 모든 믿음에는 근본적인 가정(假定; assumption)들이 있다. 유신론자들에게 있어서 근본적인 가정은 ‘신의 존재’이다. 그러나 플루는 우주와 우주 대부분의 근본적인 특징들을 근본적인 가정으로 삼았었다. 우주가 무한(無限; infinite)하지 않다는 것이 밝혀짐에 따라, 그 가정은 무너져버리고 말았는데, 우주가 어떤 시점에서부터 존재하기 시작했다면, 무엇인가가 그 시작을 초래했다고 가정하는 것이 논리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원인 없이 우주가 존재하다는 것보다, 원인 없이 하나님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이 더 타당해 보이기 때문에, 우주의 존재함을 보고 신의 존재를 주장하는 것이 더 논리적이라는 것이다.(144~145쪽).

미세하게 조정된 우주

우리의 우주는 극도로 미세하게 조정된 물리 법칙들을 가지고 있을 뿐만이 아니라, 그 법칙들이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도록 미세하게 조정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무신론자들의 가장 보편적인 대답은 우리의 우주는 수많은 우주들(다중우주론) 중에 극히 운이 좋은 한 우주라고 주장한다. 무신론자들은 신이 존재한다는 증거가 없다고 말하면서, 보이지 않는 신을 믿기를 거부한다. 하지만 (증거도 없고, 증거에 대한 실마리도 없는) 무수히 많은 우주들이 존재할 것이라는 주장은 받아들이면서, 우리 우주의 명백한 설계적 특성들을 무시하는 것은 참으로 흥미롭다. 플루는 설령 수많은 우주가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무신론자들의 딜레마를 해결해주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다중우주론이 맞든지 틀리든지, 여전히 우주에서 자연법칙들이 어떻게 기원했는지에 관한 쉽지 않은 문제에 직면해야 한다.(121쪽).

생명의 기원

생명체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도록 허용하는 물리 법칙들이 있어야 하지만, 그 법칙 자체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 생명의 기원에 대한 질문은 생명체 기계(machinery of life)를 조립하는 명령들에 대한 암호화된 ‘문자들’로 구성된 DNA의 발견과 함께 훨씬 더 복잡해졌다. 여기에 순환논법과 같은 골치 아픈 문제가 존재하는데, 그것은 DNA의 암호를 해독하는 기계(단백질)들을 만드는 명령이 DNA에 암호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것이 먼저 우연히 생겨났는가? DNA의 암호들인가, 단백질들인가? 논리적 결론은 이들은 모두 동시에 존재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암호화된 화학적 시스템의 기원(origin)을 물질세계에서 사용하는 암호, 언어, 의사전달 시스템을 등과 같은 단어들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가?”(127쪽).

플루는 자연선택은 최초 생명체의 기원을 설명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궁극적으로 생명체의 배후에는 엄청난 양의 유전정보가 존재한다. 어떤 경우에라도 정보는 필연적으로 지성을 가진 근원(intelligent source)을 가리킨다. 그래서 정보의 배후에 지적 존재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이치에 맞는다.

플루의 신

무신론자였을 때, 플루는 보이지 않으며 동시에 어디에나 존재하는 분의 개념과, 그러한 분을 인지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분투했다(148쪽). 하여튼 플루는 인격에 대한 자신의 정의(definition)을 구체화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증명하지는 못했다. 철학자 토마스 트레이시(Thomas Tracy)는 인격(persons)을 의도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존재로 간단히 정의했다(149-150쪽). 인간의 인격을 형상화 하기는 했지만, 형상화가 인간 개성에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플루는 적어도, 시공연속체(時空連續體; 4차원) 속에서 자신의 목적을 배타적으로 수행하는 우주 공간과 시간을 신(Spirit)으로 이해한다면, 전능한 신의 개념과는 본질적으로 맥락이 맞지 않는 것이라는 것이 트레이시와 레프토우의 연구로 인해 증명되었다는 것을 받아들였다.(153-154쪽).

플루는 자신이 믿는 신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신이라고 밝혔다. 그 신의 속성은 불변성, 비물질성, 전능(全能), 전지(全知), 단일성(oneness) 또는 불가분성(不可分性), 완전한 선(perfect goodness), 필연적 존재(necessary existence)이다.(92쪽). 논리적 사고를 통하여 도달한 논거(論據; argument)만을 수용하는 플루의 패러다임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유신론으로의 전향이 플루의 패러다임의 변화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확실하다.(89쪽).

플루의 신은 성경의 하나님인가?

플루가 인지하는 신의 속성 중 어떤 것은 하나님의 속성과 같지만, 플루는 (기독교 근본 신조인) 삼위일체 또는 삼위일체의 두 번째 위격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하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플루의 이신론적(理神論的; deistic) 믿음이 어떤 영역에서는 기독교적 믿음을 반영하며 또한 증거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지만, 그가 수용한 신은 성경의 하나님이 아니었다.

플루는 결코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한 적이 없다. 그는 내세를 믿지 않는 자칭 이신론자(理神論者)였다.(2쪽). 그렇지만 플루는 ‘그가 접촉했던 그리스도인들에 대해서 호의적으로 언급하고 있으며, 감리교 목사였던 그의 아버지에 대해서도, 지적인 추구 방향이 달랐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의 열정’을 가졌던 분으로 기록하고 있다.(12쪽). 플루는 특히 자연사(history of nature)에 대하여 알고 있는 사실에 비추어, 신적인 실체(divine Reality)에 대한 연구에 전적으로 열려있었으며, 그리고 신이 인간 역사에 자신을 계시하는지 안하는지에 대한 질문은 토론할만한 유효한 주제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을 제외하고는, 인간은 전능(omnipotent)의 가능성을 제한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157쪽).

신-무신론에 대한 비평

<신은 존재한다>의 두 개의 부록 중 첫 번째는 공동저자인 로이 바기스(Roy Abraham Varghese)의 ‘신-무신론(New Atheism)’에 대한 비평이다. 바기스는 신이 존재한다는 조건하에서만 설명될 수 있는 현상들이 있다고 주장한다.(161쪽). 그의 견해에 의하면, 무신론은 (당장이라도 가능한 경험적) 증거들을 대면하기를 의도적으로 거절한 결과라는 것이다.(163쪽).

첫 번째로, 바기스는 ”무엇인가가, 즉 신 아니면 우주가 항상 존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165쪽). 그는 주장하기를, 무신론자들은 영원히 존재하는 우주는 본질적으로 설명될 수 없다고 말하기 때문에, 유신론자들의 주장이 더 우월하다고 말하며, 유신론자들은 영원한 신의 존재는 설명할 수 없기는 하지만, 인간이 이해할 수 없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무신론의 입장에서는, 무(無)가 아닌 무엇인가가 존재하는 이유와, 또 그것이 왜 자연법칙을 따르고 있는지를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171쪽).

두 번째로, 바기스는 대부분의 신-무신론자들은 ‘생명의 기원(origin of life)’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한다. 오직 도킨스만이 설명을 시도하고 있는데, 그는 ”화학 모델만으로 수십 수백억 년 후에 어떤 행성에 생명체가 탄생할 것을 예측함으로써, 현재 지구상의 생명체에 대한 훌륭하고 만족스러운 설명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173쪽). 바기스는 이것을 ‘명백히 부적절하거나 열등한’것으로(172쪽), 그리고 ‘뻔뻔스러운 미신적 행태’로(173쪽), 그리고 정말로 그런 부적절한 모델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세 번째로, 무신론자들은 ‘의식(consciousness)’의 문제를 해결해야만 한다. 뇌의 어떤 영역이 의식과 관련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곳이 의식을 생성하지는 못한다. 어떤 생각을 할 때, 인간 뇌의 어떤 영역이 활동하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지만, 신경학자는 그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MRI로 알 수는 없다. ”의식은 뇌의 어떤 영역과 연관되어 있지만, 동일한 신경조직이 뇌간에 있으면 의식을 생성하지 못한다”(714쪽). 네 번째로, ”의식을 넘어서, 생각과 이해와 의미파악이라는 현상이 있다”.(176쪽). 우리의 생각, 의사소통, 언어의 사용은 신비한 능력이다. 다른 점과 비슷한 점을 인지하는 능력, 일반화하고 보편화하는 능력, 즉 철학자들이 개념 보편화라 부르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것은 인간에게 자연적이고, 유일하고, 그리고 신비스러운 것이다.(176-177쪽). 뇌는 이런 프로세스로 작동되지만, 명확한 물리적 부분이 없다. 바기스는 주장한다. ”그것들은 필연적으로 육체와 정신을 가진 인간의 행동이다.” 다섯째로, 무신론자들은 자아(self) 발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자아는 모든 형태의 유물론에 가장 명백하고 논박할 수 없는 치명적인 문제라고 주장한다.

신이 인간의 모습으로 왔는가?

부록 2에 ‘인간 역사 속의 신의 자기 계시(The self-revelation of God in human history)’라는 주제에 대한 플루와 신약학자 라이트(N. T. Write) 사이의 대화가 들어 있다. 플루는 ”신적 계시라는 주장이 사실이든 아니든, 나는 기독교는 마땅히 존중받을 만한 종교라고 생각한다”고 말하고, 기독교 신앙에 대해서 우호적으로 평가하면서 대화를 시작한다. ”예수 같은 카리스마를 갖춘 인물과 바울과 같은 최고 지성인을 결합한 것과 같은 예는 없다. … 만약 당신이 종교를 창시하기 위하여 전능자를 찾고 있다면, 기독교가 좋은 모델이다.” 그러나 안토니 플루는 부활에 대한 신약성경의 신뢰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는데, 그 이유는 사건이 일어난 지 수십 년 후에 신약성경이 기록되었으며, 가장 먼저 기록된 바울의 서신서들에 상세한 내용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긴 하지만 안토니 플루는 ”부활에 관한 주장은 경쟁 관계에 있는 종교의 어떤 교리보다도 더 인상적이다”라는 것을 인정했다.

라이트는 ”예수님은 역사적 실재(實在)에 대한 최고의 검증을 통과한 고대(古代) 인물 중 한 분이라는 증거”를 제시함으로써 반박을 시작하여, 제2 성전기 동안에 살았던 유대인들의 하나님에 대한 신조에 따라서, 예수님이 행하셨다는 이야기가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다는 증거들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그리스도인의 부활에 대한 믿음은 이교도들이 믿었던 것과는 전혀 다르고, 제2 성전기 시대의 유대인들의 부활 신앙과도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부활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은 4~5세대에 걸친 초대교회의 전승과 일치하고 있다. 라이트는 이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이 새로운 믿음에 대한 근거가 되었을 역사적 사건인 부활이 틀림없는 사실이었다고 주장한다. 라이트는 복음서가 바울의 서신서보다 나중에 기록되었지만, 부활에 대한 성경 기록은 훨씬 오래 전부터 구전(口傳)으로 전해져온 전승에서 유래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라이트의 주장에 공감을 한 플루는 이렇게 말을 바꾸어 말했다.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을 제외하고는, 전능(全能; omnipotence)한 일이 일어날 가능성을 제한할 수 없으며, 전능한 어떤 일이라도 일어날 수 있다.”

이것은 물론 전술한 하버마스와의 부활에 대한 논쟁의 중요성에 대한 근거가 된다. 플루는 아직 부활의 사실에 대해 우호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원작자에 대한 시비(是非)

책이 발간된 후에, 어떤 무신론자들은 <신은 존재한다>에 수록된 견해는 플루의 생각을 반영한 것이 아니며, 플루가 복음주의자들에게 이용당한 것이라고 주장했다2. 그러나 플루의 입장인 이신론( deism, 理神論)이 무신론보다 복음주의적 기독교 신앙에 조금 더 가까웠다는 것뿐이다. 복음주의자들이 플루를 이용하려 했다면, 그것은 실패작임이 확실하다. 플루는 신약성경의 신뢰성, 내세(來世)의 실재(實在), 다른 여러 기독교의 핵심 교리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것으로 책을 끝맺고 있다. 무신론자들은 바기스가 그 책의 진짜 저자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플루는 나이가 많아서 정신적으로 불안정했었다고 주장한다. 플루는 이름을 기억하기 힘든 실어증으로 고통을 당했지만, 대필했다는 모든 주장을 부인했으며, 책의 내용은 자신의 유신론 견해와 완전히 일치한다고 주장했다.3

정말로, 플루가 논쟁의 상대였던 게리 하버마스와 했던 인터뷰를 보면, 이러한 비난은 말이 되지 않는다.4

결론

많은 무신론자들은 종교는 본질적으로 비논리적이며, 누군가가 어떤 신에 대한 믿음을 갖게 되었다면, 그것은 오직 증명할 수 없는 종교적 체험이거나, 망상의 형태라고 말한다. 어쨌든 플루의 이신론적 주장은 자연주의적 수준의 주장을 사용하여 신의 실재(實在)를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었다.

”내가 신을 발견한 것은 순수하게 자연주의적 수준에서이며, 어떤 초자연적 현상도 염두에 두지 않았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다. 그것은 전통적으로 자연신학이라 부르는 영역에서의 작업이었다. 어떤 계시종교(revealed religion)와도 관련이 없는 것이었다. 신의 실재에 대한 개인적인 체험이나 초자연적 또는 기적이라 부르는 경험을 했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내가 신을 발견한 것은 믿음(faith)이 아니라, 이성(理性; reason)의 여정(旅程; pilgrimage)을 통해서였다.

기독교 신앙에 대한 변증(apologetic)을 찾고 있는 독자들에게는 실망스러울지 모르지만, 한번 읽어볼만한 책이다. 어떤 사람이 순수하게 증거들로부터 시작하여 유신론적 믿음에 이를 수 있는가에 대한 강력한 증거가 되고 있다. 또한 지적설계를 인정하는 것만으로는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갖는데 충분하지 않다는 교훈이 되고 있다. 구원에 이르는 믿음에는 특별계시가 필요하며, 그 계시는 하버마스와 라이트가 제시한 것과 같은 신뢰할만한 역사적 증거로 뒷받침된다.

*보충 설명 : 안토니 플루는 2010년 4월 8일에 87세로 사망했다. 텔리그래프 사망 광고(영국, 2010년 4월 13일).

참고 문헌및 메모

  1. Habermas, G.R. and Flew, A.G.N., Did Jesus Rise from the Dead? The Resurrection Debate, Miethe, T.L. (Ed.), Harper & Row, San Francisco, CA, 1987. 텍스트로돌아 가기.
  2. For instance, Oppenheimer, M., ‘The Turning of an Atheist’, New York Times, 4 November 2007, www.nytimes.com/2007/11/04/magazine/04Flew-t.html. 텍스트로돌아 가기.
  3. See Varghese’s response at blog.christianitytoday.com/ctliveblog/archives/2007/11/doubting_antony.html. 텍스트로돌아 가기.
  4. My Pilgrimage from Atheism to Theism: an exclusive interview with former British atheist Professor Antony Flew by Gary Habermas, Philosophia Christi, Winter 2005. 텍스트로돌아 가기.

관련 자료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