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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 : 그 증거는 어디에 있는가?

에 의해
번역자: 한국어창조과학회 (creation.or.kr)

여러 해를 걸쳐 나는 많은 사람들한테서 다음과 같은 질문공세를 받아왔다:

”저 는 친구들에게 증명해 보여주려 노력했습니다. 친구들은 성경을 믿지 않는다고 하면서 성경 안에 내용들에 흥미를 느낄 수 없다고들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하신 창조의 참 증거를 보고 싶다고 하며, 기독교에 관한 나의 주장을 한번 들어보자는 것입니다. 그들의 경청을 유도하기 위해서 과연 성경을 언급하지 않고서도 제가 하나님의 창조의 증거를 말할 수 있을까요?”

내 대답은 간단하다.

증거 (Evidence)

창 조론자나 진화론자, 크리스천이나 비크리스천 따질 것 없이 모두가 다 같은 증거를 가지고 있다━사실은 누구에게 같다. 이렇게 생각해 보자. 우리는 모두 다 같은 지구에서 살고 있으면서, 그 위에 있는 같은 화석 퇴적층을, 그리고 같은 동물과 식물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자. 다시 말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실들은 동일하다.

나 타나는 차이는 다른 데 있지 않고, 같은 사실을 해석하는 방법에 있다. 그러면 왜 우리들은 동일한 사실들을 다르게 해석할까? 그 이유는 우리들의 해석이 서로 다른 '전제' (자명원리 라고도 함; axioms) 들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그 전제를 증명할 수 없으면서 제 각기 참이라고들 가정하는 것이다. 이것이 차이가 생기는 원인이다. 일단 전제를 참이라고 가정한 다음 사람들은 그 전제를 다른 이론의 결론을 도출하는데 근거로 삼는다. 모든 주장은 전제 위에 근거한다. 과거의 사건을 해석할 때 전제는 특히 적절하게 이용된다.

과거와 현재 (Past and Present)

우 리는 모두 현재에 존재한다. ━ 그리고 모든 사실도 현재에 있다. 이 사실들의 현재적 존재를 가능하게 한 방법을 (동물들은 어디서 왔을까? 화석의 퇴적층은 어떻게 형성됐을까? 따위를) 이해하려 할 때, 우리는 실질적으로 과거와 현재를 연결해 본다.

그러나 과거에 없었던 우리는 당연히 과거의 사건을 관찰할 수 없었는데, 어떻게 과거의 사건을 알 수 있어서 현재 이 시점에서 그것을 설명할 수 있겠는가? 타임머신이라도 있어서 과거의 사건을 확신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 런데 크리스천은 당연히 그런 것을 하나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어떤 의미로는 '타임머신'이 맞다. 크리스천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하는 성경이 바로 그것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어디서나 계시기에 우리가 꼭 알아야할 과거의 사건들을 알려주신다.

그런 중요한 사건들 (창조, 타락, 대홍수, 바벨탑 등등)을 근거로 하고, 우리는 현재의 증거들에 대한 해석을 가능케 하는 사고방법을 세워나가는데 필요한 일련의 전제를 가지게 되었다.

진 화론자들은 그들 나름의 과거/현재에 관한 일종의 신념의 근거가 되는 전제를 가지고 있다. 예컨대, 하나님 (최소한 특별한 창조의 사역을 하는 하나님)은 없다는 전제가 그것으로서, 그 위에 그들은 현재의 증거들을 해석하는 방법을 크리스천의 그것과 달리 한다.

이런 까닭으로 크리스천과 비크리스천 사이에 증거에 관한 논쟁이 벌어질 때면, 그것은 실질적으로는 그들 나름의 전제 에 근거한 서로 다른 해석 에 관한 논쟁인 것이다. 이것이 논쟁이 자주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흐르게 되는 이유이다:

”저의 말뜻을 알아들을 수 없다는 겁니까?”

”그래요, 모르겠어요. 그러는 당신은 당신 말이 얼마나 틀렸는지 모른다는 말씀입니까?”

”천만에요. 저는 틀린 말이 아닙니다. 제 말이 분명히 맞아요.”

”아닙니다. 전혀 분명하지 않아요. 오히려 제 말이 맞는다는 것이 분명한데요.”

이 두 사람은 동일한 증거를 놓고 논쟁을 벌리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제 각기 다른 안경을 끼고 증거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출발부터 실질적으로 서로 다른 전제에 관해서 논쟁을 벌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전 까지는, 그들은 서로 다른 믿음의 근본적인 이유에 관해서 토론해볼 생각을 시작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다른 안경으로 바꿔 쓰기 전까지는 어느 누구도 증거해석을 바꿔보려 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전제를 바꾸기 전까지는 믿음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

나 는 내 이론을 이해하는 크리스천이 실질적으로 진화론자의 안경을 (전제들을 진실이라고는 인정하지 않으면서) 쓰고 보면 진화론자들이 증거를 바라보는 자세를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그러나 비크리스천은 정신적인 이유를 포함하여 수많은 이유 때문에, 그들과 크리스천 사이에 벌어지는 싸움이 전재의 싸움임을 인식하고 자신들의 전제에 대해 자문해 보기 전에는 크리스천의 안경을 쓰려 하지 않는다.

240duel

때 로는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데 어쩌면 그것이 당연하다. 창조에 대해 어떤 특수한 과학적인 논쟁에서 우리가 창조의 '증거' 를 그냥 제시하기만 해도, 그것으로서 창조가 '사실에 근거한' 것으로 상대방은 납득하는 것을 발견한다. 그러나 그는 동일한 증거에 대해서 제 3자로부터 다른 해석을 들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는 새로운 해석이 우리의 해석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면, 그는 우리의 설명을 버리고 ”더 확실한 증거를” 찾았다고 믿을 것이다.

하 지만, 우리가 이 싸움의 문제는 전제 라는 것을 상대방에게 이해시킬 수만 있다면, 그들은 문제의 소재를 더 잘 이해할 것이다. ━ 즉, 해석이 다른 것은 전제가 달랐던 것이 원인이었다는 사실을 ━ 다시 말해서 출발선에서 이미 마음에 품고 있는 믿음 자체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그것이다.

한 사람의 교사로서 나는 창조의 사실들을 학생들에게 가르쳐줄 때마다, 그들은 나의 해석과는 다른 해석을 다른 교사들로부터 듣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럴 때에는 학생들은 나에게 다시 와서는, ”자, 우리들은 흔들리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가르쳐 주세요!”

그 런데, 나는 학생들에게 사실을 어떻게 해석하는가, 사실해석을 어떻게 우리가 세운 전제에 근거시키는가를 가르치는 방법을 안 다음부터는 그 방법대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 다음부터는 다른 교사들이 사실을 자기네들 식으로 해석하려고 하자, 이번에는 학생들이 교사들의 근본적인 가정에 도전하게 되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학생들이 아니고 교사가 저한테 찾아왔다. 이 교사는 학생들이 이 교사의 증거해석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으면서, 그 교사의 사고의 기본에 도전하였다고 내게 항의하였다.

어 떤 일이 일어났었기에 학생들이 예전 같지 않았던 것일까? 나는 학생들에게 무엇을 생각하는가보다는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가르쳐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 반 학생들이 변화된 모습은 놀라웠다! 한 10 여년이 지난 후에 우리 반 학생들 가운데 몇몇이 찾아와 그들이 학창시절 내가 가르쳐준 사고방법 덕분으로 활동적이고 확신에 찬 크리스천이 되었다고 말해주었을 때 나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기뻤다.

토론을 전개하는 방법 (Debate Terms)

자주 사람들은 성경을 펴들지 않고 토론을 하자고 주장한다. 이 주장에 동의하려면, 토론을 전개하는 방법을 설정하여 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본질적으로 토론을 전개하는 조건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을 것이다.

  1. '사실들은' 중립이다. 그렇지만 세상에는 ”해석이 안 되는 사실 (brute facts)” 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사실들은 해석이 되게 되어있다. 일단 성경을 논쟁에서 배제하고나면, 그 때엔 크리스천의 전제들은 사라지고 말아서 사실을 해석할 대안을 효과적으로 제시할 수 없다. 그런데도 크리스천에 반대쪽 토론자는 여전히 그들의 전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크리스천보다 유리한 입장에 있다.

  2. 진리는 하나님과는 상관없이 독립적으로 확정될 수 있으며 또 확정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여호와를 경외함이 곧 지혜의 근본이다” (시편 111:10).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잠언 1:7).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고린도전서 2:14).

크 리스천은 이 싸움에서 성경을 떼어놓을 수는 없다는 점을 확실히 알아야 한다. 아무리 뭐라고 해도 비크리스천은 결코 중립이 아니다. 성경은 이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해치는 자니라' (마태복음 12:30).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요한복음 3:19).

자연주의와 논리, 그리고 현실 (Naturalism, Logic and Reality)

창 조론에 반대하는 사람들 중에서 자신들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조차 의식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기본적인 전제라고 하면 다름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을 배제한다는 전제다. 다시 말해서 모든 것은 물질로부터 생겼으며, 세상에는 초자연적인 존재라든가 태초의 창조적인 지성 따위는 없었다는 자연주의/유물론의 주장이1바로 그들의 전제이다. 아래에 제시된 두 예가 그들의 가정이 내포하고 있는 문제점들을 부각시키고 있다.

  • 한 젊은이가 내 세미나에 찾아와서, '아무리 선생님의 말씀을 들어도 저는 여전히 '빅뱅(big bang)' 이론을 믿고 있습니다. 즉, 우리는 모두 무작위적인 과정을 거쳐 우연히 여기 던져졌다는 이론 말입니다. 요컨대 저는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 그래요! 그렇다면 당신의 두뇌나 생각조차도 무작위의 산물이라는 말이군요. 따라서 당신의 생각이 옳은지 조차도 모르겠다는 말씀이 되겠어요. 그렇다면, 당신은 당신의 두뇌가 올바른 길로 진화되었는지도 모르겠군요. 심지어 그런 맥락에서 보면 당신은 옳다는 말의 의미도 모른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당신은 지금 당신의 진술이 옳은지 또한 내게 던진 질문 그 자체가 옳은 지도 모르겠군요.'

    그 젊은이는 나를 쳐다보다가 머쓱해서 불쑥 이렇게 물었다. ”선생님이 추천하신 책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그는 결국 자신의 믿음이 그 스스로의 근거를 도려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그들이 전개하는 ”합리적 설명이란 것”이 그 합리성 자체의 근거를 파괴하였던 것이다.

  • 또 한 번은, 세미나가 끝나자 한 남자가 내게로 와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저는 무신론자입니다. 저는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에 절대가치를 믿지 않음은 물론이고 현실은 확신할 수 없는 것이라고 인식합니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러시다면 당신은 지금 이 진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러자 그는 ”그렇군요” 하고 내 말에 호응하였다. 그래서 나는 재차 ”뭐가 그렇다는 것이죠?” 하고 물었다. 그러자 그 사람은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미소를 머금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어쩌면, 나는 집으로 돌아갈까 봅니다.” 그래서 나는 ”어쩌면, 집에서도 없을 것입니다” 했다. 그는 다시 ”그렇군요”. 그래서 나도 또 다시 ”뭐가 그렇다는 것입니까?” 라고 되물어주었던 적이 있었다.

    이 정도에서 그 사람은 내 말뜻을 알았을 것으로 나는 믿는다. 만약에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궁극적으로 그리고 또 철학적으로 어떻게 현실에 대해 말할 수 있겠는가?! 진리가 무엇인지 아는 것 자체는 고사하고 우리는 어떻게 진리라는 가치의 존재를 합리적으로 믿을 수 있겠는가?

참고 문헌및 메모

  1. This assumption is even defended, as a 'practical necessity' in discussing scientific things including origins, by some professing Christians who are evolutionists.

[Ed. Note: for more information on formal logic and the Christian faith, see Loving God with all your mind: logic and creation.]

상대방이 요구하는 토론의 조건에 동의하면 우주역사에 대한 성경의 말씀이 그 역사를 이해하는데 적절하지 않다는 저들의 전제를 암암리에 수용하게 된다!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판결한다 (Ultimately, God's Word convicts)

베 드로전서 3:15는 물론 다른 성경 구절들에 있는 말씀들도 사람들에게 진리를 깨우치게 하기 위해서라면 우리는 모든 논쟁의 수단을 다 사용하여야함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리고 고린도 후서 10:4-5은 저들의 오류를 반박하여야 한다고 말씀한다 (바울이 이방인들에게 선교할 때와 같이). 어쨌거나 우리는 결코 히브리서 4:12의 말씀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서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또한 이사야 55:11의 말씀은,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 하였다.

비 록 우리 인간의 논리가 제아무리 힘이 있다고 하여도, 궁극적인 판결의 권위를 가지는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들에게 진리로 가는 길을 열어준다. 우리는 어떤 논쟁에 임할 지라도 판결의 권위가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앞세워 논쟁을 하여야 한다는 점을 명심하여야 한다.

실용적인 적용방법 (Practical Application)

사람들이 내게로 와서 성경은 아니고 '증명'을 또는 '증거'를 말하라고 언쟁할 때면, 나는 아래와 같이 대답한다.

”저 로서는 당신들이 성경을 믿는지 안 믿는지 알 수 없군요. 그러나 저는 성경을 믿습니다. 성경은 제가 우주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주변의 사실들을 올바르게 해석할 수 있는 근거라고 믿습니다. 성경에 기초를 두고 생각하는 저의 사고가 어떻게 이 세계를 설명하는가를 그리고 어떻게 과학과 상충하지 않는가를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예컨대, 성경은 하나님이 동물과 식물들을 그 종류별로 지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소위 자연선택이라든가 유전적 부동(浮動)이란 것이 어떻게 설명될 수 있으며, 또 해석될 수 있는가를 설명해 보겠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유전학이라는 과학이 성경에 기초를 두면 어떻게 조리가 서는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여 러 가지 과학적인 예에도 이 방법을 적용한다. 예컨대, 죄와 심판과 같은 문제가 지질학이나 화석의 증거와 얼마나 적절하게 연계되는 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어떻게 해서 인간의 최초의 타락이 뒤이은 창조의 저주와 더불어 인간에 유해한 돌연변이, 폭력 그리고 죽음의 증거로 되었는가를 보여주었다.

일단 이것을 상세히 설명한 다음, 나의 설명은 이렇게 이어졌다.

”자 내 설명은 이만큼 해두고 지금부터는 이 사안들에 대한 당신의 설명을 들어봅시다. 당신의 신념에 기초를 둔 당신의 사고 방법이 어떻게 이와 같은 증거들을 설명할 수 있는지 보여주십시오. 그리고 나의 과학적 설명과 논리에서 어디에 오류가 있었는지도 지적하여 보세요.”

논쟁을 유리하게 펼쳐 나아가려면, 크리스천은:

  1. 증거를 해석하는 사고방법을 구축하기 위하여 성경적인 전제들을 사용하여야 한다.

  2. 성경과 과학은 적대하지 않고 동행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1

  3. 상대방이 근거로 삼는 전제들 (전제조차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지만)에 공격을 가하여야 할 것이다.

  4. 상대방한테 그들의 과학과 그들이 내세우는 설명이나 전제들과 논리적으로 합치되는가를 증명해 보라고 강력히 요구한다.

  5. 인간의 영혼을 판결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영광을 돌려야 할 것이다.

논 쟁 중에 상대방을 창조자/회복시키는 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신뢰로 인도하려는 노력은 않고 창조만을 믿으라고 요구하는 것은 결코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사실을 꼭 기억하여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영광되게 하는 사람을 영광되게 하신다. 우리들은 생명에 관한 모든 진실을 사람들에게 가르칠 때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는 방법을 사용하여야 할 필요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참고 문헌및 메모

  1. 사실을 말하자면, 과학은 기독교적 이념구조 안에서만 실패작을 피할 수 있었다. 심지어 세속적인 과학자들도 이 점에 한해서는 실질적으로 동감하고 있다. 과학도 실질적이며 객관적인 이 우주가 변하지도 속이지도 않는 神性의 法 授與者에 의해서 창조되었다는 성경적 전제를 요구하고 있다. 그 신성의 법 수여자는 인간의 마음을 원칙적으로 우주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으로 (당신의 형상으로) 창조하신 분이다. [Ed. note: Refuting Evolution, Ch.1, discusses this in more detail] 텍스트로돌아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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