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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라이엘의 숨겨진 행동 강령 — '모세로부터' 자유로운 과학을 위해

저자: and
번역자: 한국창조과학회 (creatio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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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라이엘의 ‘지질학의 원리(Principles of Geology)’ 속표지 (1830년).

19세기 지질학자이자 변호사였던 찰스 라이엘(1797~1875)은 전 세계의 지질학이 오래된 지구 나이(성경 역사의 6000년 기간 보다 훨씬 더 오래된) 개념을 받아들이도록 인도했고, 찰스 다윈의 진화론적 생각을 견인하고, 그 길을 닦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렇지만, 찰스 라이엘은 정말 과학적으로 객관적인 관점에서 그 지층 암석들을 관찰했던 것일까?

그의 개인 서신에서, 찰스 라이엘은 자기 생각의 강력한 반-성경적(반-모세적) 본질을 인정하고 있었다. 1829년 그의 책 ‘지질학의 원리(Principles of Geology)’의 초판이 출간되기 단지 몇 달 전에, 동료인 오래된 지구 연대를 믿고 있는 지질학자 로더릭 머치슨(Roderick Murchison)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이렇게 쓰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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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질학에 대한 찰스 라이엘의 개념은 찰스 다윈에게 장구한 연대를 생각하도록 영향을 주었고, 그의 진화론이 탄생하도록 하는 길을 닦았다.
(‘Voyage that Shook the World’ 그림)
”나는 지질학의 진보에 대한 나의 생각이 대중화될 것이란 걸 믿고 있다네. 늙은 플레밍(존 플레밍 목사)은 두려워했고, (지구의) 나이는 나의 반-모세적 결론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네. 적어도 그 주제는 성직자에게 인기가 없고 불편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두렵지 않다네. 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말할 것이지만, 가능한 회유적인 방법으로 할 것이라네.”1

에드워드 베일리(Edward Bailey)가 쓴 찰스 라이엘의 자서전은 그 당시에 그것을 기록하고 있었다. '파리에서 며칠 동안, 라이엘은 ‘홍적층과 (석회) 동굴에 대하여, 엉터리 대홍수 이론에 대한 논리적 비판’이라는 강의를 즐기고 있었다.”2

다음 해에, 찰스 라이엘은 명백한 행동 강령을 가지고 있었음을 볼 수 있다. 그의 의도는 ”모세로부터 자유로운 과학”이었다.3 이것은 라이엘이 1830년 6월 14일에 조지 스크로프(George Poulett Scrope, 1797~1876)에게 쓴 편지에서 드러나 있다 :

”나는 자네가 모세로부터 과학을 자유롭게 할 Q.R.(Quarterly Review) 지에 들어오리라 확신한다네. 교회는 이것을 심각하게 여기고 있고, 상당한 준비를 하고 있다네. 버클랜드(Buckland) 주교는(우리는 섬너(Sumner) 주교로 추정) ‘British Critic and Theological Review’ 지에서 꾸지람을 주고 있었지. 그들은 마침내 모세의 체계 하에서 발생한 혼란과 치욕을 보았을 것이네. 아마도 시작(beginning)이 있었고 - 그것은 형이상학적이며 신학자에게는 가치 있는 질문이지 - 아마도 끝이 있겠지. 당신이 말한 것처럼, 종들(species)은 시작되었고 끝이 있었지. 그렇지만 그 비유는 약하고 동떨어져 있네. 아마도 그것은 하나의 비유겠지. 그러나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허튼(James Hutton)이 말했듯이, ‘시작의 흔적도 없고, 끝의 전망도 없다’는 것일세… 내가 요구하는 것은, 나에게 나타난 것처럼 ‘자연의 또 다른 상태‘가 모두 하나였던, 시작(태초)으로 말해지고 있는 과거의 어떤 주어진 시기에 대한 질문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지. 그러나 나에 대한 자네의 공격이 시작에 대한 가능성이 아니라, 내가 부정하는 증거를 지적하는 것이라면, 나에게는 해롭지가 않다네. 나는 자네가 Q.R.에서 할 수 있었던 만큼, 모세에 관한 도덕적 판단을 지적하는 것이 두려웠네. 아마도 나는 코란에 대해 관대한 사람이었나 보네. 그것에 대해 많은 간섭을 하지 말아주길 바라네.

(역사를 통해) 일어날 지도 모르는 일이 두렵지만, 우리를 자극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전할 것이네. 만약 자네가 그것에 대해 승리하지 못하고, 현재의 나이에 대한 관대함과 솔직함을 지지해준다면, 주교들과 계몽된 성도들은 고대와 현대의 자연 신학자들 모두를 경멸하는 일에 우리와 함께 할 것일세. 자네와 같은 죄인이 기뻐할 동맹파업(strike)을 일으킬 시기가 된 것이지. Q.R.은 자네에게 열려있네.”

추신… 나는 5~6년 전(1824–25)에 그 개념을 생각했다네. 모세의 지질학이 끌어내려질 수 있다면, 그것(성경)은 역사적인 스케치가 될 것이고, 자네는 나의 생각을 훔쳐야만 할 것이네. 그들에게 그것을 살펴보게 하고, 도덕적 판단을 해보라고 하게.”4

변호사였던 라이엘은 과학적 조사를 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그의 동일과정설(균일설)이 성경의 가르침과 명백히 모순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교회에서 수용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정치적 게임에 몰두하고 있었던 것이다.5 오늘날의 지질학자들이 인식하고 있듯이, 라이엘의 비밀스러운 계획은 복음을 훼손하고 있는 그의 잘못된 생각이 교회내로 수용되도록 기만했을 뿐만 아니라, 지질학이 한 세기 이상의 기간 동안 잘못된 경로로 나아가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

”또한 라이엘은 지질학에 가짜 약(snake oil)을 팔았다. 그는 지질학자들을 설득했다 … 모든 과거의 지질학적 과정들이 본질적으로 현재의 (느린) 속도로(역사적 시간 내에서 관찰된 속도로) 작용했다는 것이었다. 이 극단적인 점진주의(extreme gradualism)는 점진적이지 않음을 가리키는 수많은 긍정적 증거들을 가지고 있는, 급작스럽거나 대격변적이었던 사건들을 거부하는 것을 포함하여, 수많은 불행한 결과를 초래했던 것이다.”6

참고 문헌및 메모

  1. From Mortenson, T., The Great Turning Point: The Church’s Catastrophic Mistake on Geology—Before Darwin, Master Books, Inc., P.O. Box 726, Green Forest, AR 72638, USA, 2004, pp. 225–226, citing Brooke, J., 'The Natural Theology of the Geologists: Some Theological Strata”, in Jordanova, L. and Porter, R., Images of the Earth (British Society for the History of Science, Monograph 1, 1979), p. 45. 텍스트로돌아 가기.
  2. Bailey, E., British men of science: Charles Lyell, Thomas Nelson and Sons Ltd, London, Great Britain, 1962 p. 75. 텍스트로돌아 가기.
  3. Ref. 2, pp. 77–78. Bailey adds re Lyell: 'In this matter, he thinks, ‘Prévost has done a little but is a diluvialist, a rare thing in France’.” Diluvium was the term used for the surface sediments attributed at the time to Noah’s Flood but later recognized as being formed by glaciers during the Ice Age. 텍스트로돌아 가기.
  4. From Mortenson, T., The Great Turning Point: The Church’s Catastrophic Mistake on Geology—Before Darwin, Master Books, Inc., P.O. Box 726, Green Forest, AR 72638, USA, 2004, pp. 226–227, citing Lyell, Katherine (Lyell’s sister-in-law), Life, Letters and Journals of Sir Charles Lyell, Bart. (London: Murray, 1881), I:p. 268–271. 텍스트로돌아 가기.
  5. Lyell further promulgated his uniformitarian views in a lecture at King’s College, London, on 4 May 1932, when he said “the physical part of Geological inquiry ought to be conducted as if the Scriptures were not in existence”. Lecture II at King’s College London on 4 May 1832—quoted in Rudwick, Martin J.S., Charles Lyell Speaks in the Lecture Theatre, The British Journal for the History of Science 9(2):147–155, 1976, DOI:10.1017/S0007087400014734. Such a view might be reasonable if the Bible did not describe any events relating to the formation of rocks on earth. But the Bible does speak of such events, i.e. Creation Week and the Flood. Thus Lyell’s approach is like trying to write a history of British settlement in Australia in the 1700s by merely studying surviving buildings and other remnant artifacts around Sydney but intentionally ignoring written eyewitness testimony from that time. Or like writing about the life of Jesus on earth without reference to the Gospels of Matthew, Mark, Luke and John. 텍스트로돌아 가기.
  6. Allmon, W.D. Post Gradualism, Science 262:122–123, October 1, 1993. Warren Allmon, Director of the Paleontological Research Institution in Ithaca, NY, and Adjunct Associate Professor of Earth and Atmospheric Sciences at Cornell University, was reviewing Ager, D., The New Catastrophism: The Importance of the Rare Event in Geological History, Cambridge University Press, New York, 1993. 텍스트로돌아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