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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윤리

창세기때 만들어지다

저자: 마크 앰블러 ()
번역: 김정화 (Christina Jung Hwa Kim)
검토: 이소정 (So Jung Lee)

Published: 2 February 2021 (GMT + 10)
milkmaid
종교개혁 미술가 얀 베르미어 (Jan Vermeer)의 우유 짜는 여자라는 작품에서 일의 미덕을 강조한다.

나는 ambler이다. ‘amble’은 천천히 걷거나 움직이는 것을 의미한다. 아마도 선조들의 성격에 따라 선조들이 채택했거나 붙여진 이름인 것이 분명하다. 그 이름 뿐만 아니라, 선조들은 동일하게 신체적인 그리고 ‘정신적인’ 유전자를 내게 물려주었다. 나는 천천히 움직이는 경향이 있는데, 내가 선천적으로 게으른 편임을 좋게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나의 10대 청소년 시기와 젊은 성인 시기를 최소한의 노력 만을 들이며, 시간만 보냈던 불량한 사람이었다. 내 주위에는 부지런함과 성실에 있어서 아직도 나를 부끄럽게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바로 나 아내와 CMI 동료들이다. 이제 나는 그때와 전혀 달라졌다. 나는 여전히 내안에서 게으름을 피우고 싶은 유혹을 느끼지만, 약 33년 전, 일에 대한 나의 태도가 바뀌기 시작하였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님과 구원자로 믿으며 나의 죄(나태함 포함)를 회개했고, 하나님은 내 안에 생산적인 삶을 위한 필요와 목적에 대해 전혀 새로운 세계관- 일 정신- 을 심기 시작하셨다. 이 ‘노동 윤리’ 의 토대는 무엇인가?

아프리카계 미국인 통계학자이자 경제학자인 토마스 소웰(Thomas Sowell)도 이 토대를 인정하였다. 그의 저술에서 그는 미국 남북전쟁이 끝난 뒤 남부에 가서 가르침과 설교로 ‘백인’ 문화의 상당 부분을 특징 짓고 있었던 게으름과 방임, 폭력의 ‘크래커’ 문화를 탈바꿈 시킨 개신교 교사와 선교사들의 직업 윤리를 종종 강조해서 밝히고 있다.1 그는 직업윤리가 성경적 세계관 전체의 일부라는 것을 인정한다.

개인적인 직업 윤리에 대한 기독교적 토대는 무신론 역사가 나이얼 퍼거슨(Niall Ferguson) 같은 비기독교인에 의해서도 종종 인정되어진다. 경제적, 기술적으로 성공한 민주주의를 정의하는 특성을 밝히는 책에서 그는 수혜자들이 인정하던 말던 그러한 특성 (‘그가 부르는 킬러 앱’)의 기독교적 토대를 반복적으로 지적한다. 그의 저서- 문명: 웨스턴 파워의 여섯 가지 킬러 앱- 에서 퍼거슨은 이 성공의 여섯 가지 주요 속성을 밝혔다. 이중 여섯 번째 속성은 “직업 윤리- 앱 1부터 5에 의해 창조된, 역동적이나 잠재적으로 불안정할 수 있는 사회에 접착제 역할을 제공하는, (여러 다른 출처들 가운데) 개신교에서 나오는 도덕적 틀과 활동 모드” 이다.2 다시 말해서 성경적 기독교 세계관이 성공적인 사회를 위해 필요한 직업 윤리만을 제공하는 것 뿐 아니라, 서구 문명의 다른 속성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접착제’ 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이 책은 기독교 세계관의 역할에 대해 다른 유사한 주장을 많이 펼치는데, 이 중에는 “개신교가 서구로 하여금 일을 하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절약과 독서를 하게 하였다.” 도 포함된다.3 이것은 주로 개신교의 가치인 성경 읽기를 가리키는데, 이 뿐 아니라, 전반적인 읽고 쓰는 능력도 가리킨다.

그렇다면 이러한 직업윤리를 제공하는 기독교는 무엇일까? 물론, 일해야 할 필요성을 칭찬하고 높이는 일반적인 원칙들이 성경에 제시되어 있다. 성경의 잠언은 우리에게 권면하길,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 가서 그가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개미는 두령도 없고 감독자도 없고 통치자도 없으되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여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 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누워 있겠느냐 네가 어느 때에 잠이 깨어 일어나겠느냐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누워 있자 하면 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같이 이르리라.” (잠언 6:6-11)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우리가 여러분에게 명령한 대로, 조용하게 살기를 힘쓰고, 자기 일에 전념하고, 자기 손으로 일을 하십시오.” 라고 촉구한다 (데살로니가전서 4:11, 새번역 성경). 그러나 일에 대한 성경의 의무는 이러한 지침보다 훨씬 더 깊고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나님은 6일 동안 그의 창조 작품에 일하셨고, “다 마치시고, 이렛날에는 하시던 모든 일에서 손을 떼고 쉬셨다.” (창세기 2:2. 개역성경).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어진 바, ,인류의 노동에는 힘든 노동이건, 창조적인 노동이건, 발명 이던지 간에 신성한 요소가 들어 있다. 단순적인 일이던지, 창조적인 일이던지, 지성을 요하는 일이던지 간에, 우리의 노동에는 ‘신과 같은’ 모습이 담겨 있다. 많은 노동이 이 세 가지 모두를 결합하여 가지고 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본보기가 주어졌을 뿐 아니라, 창조 6일째 되는 날에, 일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주어졌다. 많은 사람들은 노동이 저주의 결과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아담이 타락하기 전에, 하나님은 그에게 생산적이 되라는 지시를 내리셨다. 하나님께서는 6일째 되는 날 아담과 이브를 창조하신 후, 이들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1:28, 개역성경) 라고 하셨다. ‘subdue (디스리다)’ 와 ‘domination (지배, 통치)’ 의 단어는 모두 동사이며, 주님이 주신 이 책무를 수행함에 있어 노력과 기발한 지혜를 암시하고 있다. 창세기 2장은 창조 6일차 관련, 1장에서 요약된 부분에 대해, 훨씬 더 많은 세부 사항을 알려주고 있는데, 사람의 역할에 대해서 더욱 자세히 알려주고 있다. 그래서 창세기 2장은 이 노동이 어떤 모습 일지 구체적인 지침을 제공하고 있다. “주 하나님이 사람을 데려다가 에덴 동산에 두시고, 그 곳을 맡아서 돌보게 하셨다.” (창 2:15, 새번역 성경). 노동, 일, 창의력, 생산성 등은 우리가 누구로 지음 받았는지에 대한 필수적인 측면이다. 저주를 받은 이후 노동은 살아남기 위해 우리에게 필수적인 것이 되었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창조물에 대해 청지기 역할을 하는 것은 지속적인 하나님의 계획의 일부였다. 이것이 왜 우리가 불필요하게 나태한 시간을 보낼 때, 일반적으로 최악의 상태에 있는지에 대한 이유이다.

이 역사적으로 견고한 토대 위에, 개혁파는 생산성, 무역, 장인 기능, 상업, 예술, 과학, 기술의 씨앗을 심었고, 이것은 16세기 부터 꽃을 피우기 시작하였으며, 오늘날 전세계 사람들로 이끌리게 만든 서구 문명과 가치로 이끌었다. 그들은 땅의 기초를 파는 노동자로서 든, 웅장한 건물을 설계하는 건축가로서 든, 노동에는 인간 영혼의 깊은 필요를 충족시키는 존엄성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임금을 받는 것은 중요한 것 이였으나, 생산적인 삶의 만족에 비해선 부차적인 것 이였다.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신 방법인 것이다.

우리는 다시 한번 역사적인 면으로 볼 때 창세기가 기독교 교리뿐 아니라 사회 보건에도 얼마나 기초적인 토대를 제공하는지 본다. 역사적인 면의 창세기를 부인하는 오늘날 교회는 얼마나 비극적인가. 기초적 토대를 허물고 있지는 않은 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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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브뤼겔 디 엘더 (Pieter Bruegel the Elder)가 그린 눈 속의 사냥꾼 이라는 제목의 이 그림에서 겨울 생활의 즐거움과 아름다움은 물론 겨울 생활의 고난이 묘사되어 있다.

물론, 일을 하는데 있어, 야망, 생존, 민족주의, 물질주의, 혹은 강압과 같은 동기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발명성과 생산성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우리가 만들어졌다는 것에서 나온 기본적이라는 것을 배재할 때, 우리의 노력에 대한 보상은 결코 만족스럽지 않으며, 종종 파괴적인 허무주의로 이어진다. 오늘날 사람들은 서구 문명에게 놀라운 이점을 안겨주었던 이전 ‘기독교적 합의’ 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이 문명이 세워졌던 토대인, 하나님과 그의 말씀을 떠나고 나니, 하나님께 대한 감사 대신, 나에게는 그럴 만한 자격이 있어 라는 생각과 분개가 대신 생겨나고 있다. 결국 그렇다면, 이 임의의 우주에서 감사할 대상이 있을까?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전도서 1:2-3, 개역성경). ‘해 아래’ 부분은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다. , ‘그곳에 계신 하나님’, ‘거기에 있고 침묵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을 믿는 것이 점점 더 금지되어 지고 있다.4 하나님은 말씀과 그 아들-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히브리서 1:2)- 를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우리가 하나님 형상대로 만들어졌다는 진리의 토대 위에, 하나님이 일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일하고, 하나님이 하나님의 노동으로부터 쉬셨기 때문에 우리도 노동에서 쉰다. 우리는 우리의 애씀 가운데, 목적과 의미, 만족을 찾을 수 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런 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린도전서 10:31, 개역성경) 고 권면하였다. 만약 먹고 마시는 것에도 신성한 요소가 있다면, 디자인하는 것, 코딩하는 것, 요리하는 것, 목공예하는 것, 설거지하는 것, 그림 그리는 것, 계산기 두드리는 것, 벽돌 쌓는 것, 가르치는 것, 배관일 하는 것, 작곡하는 것, 돌과 화석 연구 하는 것, 시험을 위해 벼락치기 공부하는 것, 치유하는 것, 돕는 것, 주최자가 되는 것, 혹은 세상에 있는 수많은 활동과 무역 및 직업, 이 모두 다에 신성한 요소가 들어 있다. 하나님께 영광을.

References and notes

  1. Sowell, T., Black Rednecks and White Liberals, Encounter Books, 2005. 텍스트로돌아 가기.
  2. Ferguson, N. Civilization: The six killer apps of western power, Penguin Books, p. 13, 2012. 텍스트로돌아 가기.
  3. Ferguson, N. Civilization: The six killer apps of western power, Penguin Books, p. 264, 2012. 텍스트로돌아 가기.
  4. The titles of two of the many books by the late Christian philosopher Francis A. Schaeffer, who brilliantly explained these connections between the Christian worldview and the development of Western society. 텍스트로돌아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