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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의 불법적인 발명품

<종의 기원>의 원조가 다윈이라는 생각은 재고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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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자: 한국어창조과학회 (creation.or.kr)

자 연선택에 의한 진화(evolution)의 개념은 찰스 다윈에 의해서 창안한 이론으로 여겨지고 있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그리고 그 자신도 친구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진화의 개념을 자기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child)' 이라고 언급하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들은 모두가 다 사실과는 엄청난 거리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좋게 평가한다 해도 진화론은 그의 양아들에 지나지 않으며, 최악으로 평가한다면 그의 사생아였던 것이다.

에라스므스 다윈과 제임스 허튼 : 17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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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허튼

우리는 최근 판 지에서 1895년에 <종의 기원>1에서 찰스 다윈이 주장하고 제시한 개념과 실례들은 거의 모두가 그 보다 65년이나 앞서서 그의 할아버지였던 인본주의자 에라스므스 다윈이 (1789)에서 이미 써먹은 개념이고 실례들이라는 것을 밝힌바 있다.

그 런데 스코틀랜드 출신의 지질학자 제임스 허튼(1726-1797)도 일찍이 1794년에 이미 자연선택 이론을 이해하고 있었다는 새로운 증거가 드러나고 있다. 허튼은 지구의 나이는 광대하여(수 천년이 아니라) 도저히 '측량할 수 없다' 라고 주장했던 사람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것은 그가 성경의 대홍수 내용을 거부했기 때문에, 지구 역사의 초기에 대격변은 없었다고 주장하면서 오류를 범했던 것이다.2

카 디프 대학(Cardiff University)의 고기후학 교수로 재직 중인 폴 피어슨 (Paul Pearson)은 최근에 스코틀랜드의 국립도서관에서 이전에 출판된 적이 없었던 2,138페이지에 달하는 3 권의 저작물을 발견하였는데, 그것은 1794년 허튼이 저술했던 저작물이었다. 제목이 'An Investigation of the Principles of Knowledge and Progress of Reason, from Sense to Science and Philosophy'3 로 되어 있다. 이 저작물에는 '종자의 변이'(seminal variation)‘4에 대한 허튼의 이론 전체가 담겨져 있었다.

그 저술 내용 중에서 하나의 예를 살펴보자. ”생존을 위해 날쌘 네 발과 예민한 시력 말고는 의지할 만한 장점이 없는 개들 속에 끼어 있는 느림보 개들은 아마도 멸종할 것이다. 그리고 날쌘 개들은 그 종족을 계속 보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에 ”예민한 후각이 생존에 더 필요하다”면, 그 때에는 '그 종족의 자연스러운 경향이 종자의 변이라는 동일한 원칙이 그 짐승의 성질을 변화시키고 날쌘 동작으로 먹이를 잡는 종족들 대신에 후각이 발달한 사냥개 종족을 생산할 것이다.” 라고 말하면서, 이어서 그는 ”동일한 변이의 원칙은 서식처가 숲 속이든 초원이든 상관 없이, 모든 식물의 종에도 반드시 영향을 줄 것이다”5 라고 말했다.

그 밖에 인물들 : 1831 ~ 1858

찰스 다윈보다 여러 해를 앞서서 자연선택의 주제에 관해 기사를 발표했던 저술가들이 제임스 허튼 말고도 여럿이 있었다.

윌리엄 웰즈 (William Wells; 1757-1817)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미국인 의사로서, 1813년에 (사후 1818년에 출판됨)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과 유사한 개념을 기술한 적이 있었다. ”중앙아프리카 지방에 사는 어떤 부족은 다른 부족들보다 그곳 풍토병에 적응하는 능력이 많았을 것이다. 적응능력이 미약한 부족들은 인구 수가 줄어가는 동안, 이 부족은 결국 인구 수가 늘어날 것이다.” 그는 이어서, ”이 원기 왕성한 부족은 검은 피부색을 하고 있을 것이다. 제일 검은 피부를 한 부족이 계속 살아 남아서 마침내 제일 번창할 것이다. 한 부족이 특정 지역에서 기원하여 그 곳에서 번창하는 것이 어찌 그 부족뿐이겠는가” 라고 말하고 있었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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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다윈이

패트릭 매튜 (Patrick Matthew; 1790–1874)는 스코틀랜드의 어느 과수원의 주인이었다. 그는 1831년에 출판했던 책 On Naval Timber and Arboriculture의 부록에서 자연선택과 진화론적 변화의 개념을 간단하게 언급한 적이 있었다. 매튜는 자신이 찰스 다윈을 예견해왔었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하였다. 그리고 그의 책 제목 위에 ‘자연선택 원리의 발견’ 이라고 써 놓기까지 하였다. 피어슨 교수는 웰즈, 매튜, 그리고 찰스 다윈 등 모두가 에딘버러 시에 있는 대학을 졸업했으며, 그곳은 ‘과학 클럽과 사교 클럽으로 유명한 곳'으로서, 제임스 허튼의 고향이기도 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또, ”찰스는 비글호의 항해에서 관찰된 다양한 종(種)들에 대한 설명을 위해, 반쯤 망각하고 있던 대학시절의 사상이 그의 마음 속에 되살아났을 것이라”3는 흥미로운 암시를 한바 있다.

에드워드 블라이드 (Edward Blyth; 1810–1873)는 아마 다윈에게 가장 큰 사상적 영향력을 끼쳤던 사람일 것이다. 영국의 화학자요 동물학자였던 블라이드는 세 번에 걸쳐 자연선택에 관한 주요한 기사를 썼다. 그 글은 1835년에서 1837년까지의 기간에 출판된 잡지 The Magazine of Natural History에 실렸다.7 찰 스 다윈도 그 내용을 소상히 알고 있었다. 이 잡지는 당시 선도적인 동물학 잡지 중의 하나로서, 그의 친구였던 헨스로우(Henslow)나 제닌스(Jenyns)의 기사들도 담고 있었다. 그리고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는 블라이드의 기사들이 실렸던 이 잡지들이 보관되어 있는데, 그 잡지에는 블라이드의 기사에 찰스가 직접 손으로 각주를 달아 놓은 사본들도 포함되어 있다.8

찰스 다윈의 '역사적인 소묘' (Charles Darwin's 'Historical Sketch')

1859년에 <종의 기원>을 출판한 후, 찰스는 그보다 앞서 자연선택에 관한 글들을 발표했던 이들 말고도 다른 사람들에게 지고 있던 빚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것에 대해, 동시대의 학자들로부터 비난을 받았었다. 비난의 목소리가 너무도 고조되자, 찰스는 1861년에 <종의 기원>의 제 3판의 출판에 즈음해서 이들 중 일부 학자들의 이름을 언급하는 '역사적인 소묘' ('Historical Sketch')를 부언했다. 그런 다음 그는 계속되는 비난 속에서 세 번에 걸친 후속 출판에 올린 학자들의 이름의 수를 늘리다가, 마침내 제 6판과 최종 판에서 그는 종(種)이 어떻게 기원했으며 변화했는가를 발표한바 있었던 34 명의 학자들의 이름을 언급하였다. 그렇지만 그는 그 기사의 세부 내용에 관해서는 일체 언급하지 않았고, 다만 주제의 본론이 아닌 '역사적인 소묘'라는 장에 한정시켜 언급했을 뿐이다. 달링턴 (Darlington)은 그것을 ”일찌기 기록된 것 중에서 가장 믿을 수 없는 기술” 이라고 평했다.9

영국의 풍자 작가 사무엘 버틀러 (Samuel Butler)에게 이 혹평은 오히려 약과였다. 1879년, 사무엘은 Evolution Old and New를 출판하였는데, 그 책에서 그는 찰스 다윈이 뷰퐁(Buffon), 라마르크(Lamarck), 그리고 다윈의 할아버지 에라스므스의 진화론을 모독하였다고 비난했다.

표절에 대한 현대의 비난 (Modern Accusations of Plagiarism)

다 윈이 다른 사람들의 이론을 도용('표절'로 표현하는 사람도 있다)하였다고 주장하는 현대의 지도자급 진화론자들 중에 한 사람으로서 故 로렌 아이슬리(Loren Eiseley)를 꼽을 수 있다. 그는 죽기 전에 펜실바니아 대학교에서 동물학과의 역사과학 교수로 있으면서, 벤자민 프랭클린을 가르친 적이 있었다. 아이슬리는 10 여년간을 다윈의 사상이라고 일컫는 기원 이론을 추적한바 있었다. 1979년에10 그는 다윈의 저작물들이 담고 있는 주요 개념들 - 생존경쟁, 돌연변이, 자연선택, 그리고 성선택(sexual selection) - 은 ”1835년에 발표된 블라이드의 저작물” 안에 충분히 발표되어 있던 내용들이었다11고 주장하였다. 아이슬리는 또한 ”블라이디즘 (Blythisms)”을 인용하면서, 1836년판 블라이드의 출판물이 발표된 이후, 다윈은 드물게 어떤 단어들을 사용했다는 내용도 인용하였다. (예를 들어 inosculate(접합하다, 결합하다) 라는 단어를 pass into(~로 변화한다)'라는 뜻으로 사용함). 심지어 비슷한 문장 안에서 비슷한 생물체들의 목록을 다윈이 선택한 내용도12 인용했다.

아이슬리의 저작물을 읽은 20세기의 여러 진화론자들도 말할 용기를 얻었던 것 같다. 달링턴은 ”심지어 보통의 지적 완전함과도 타협되지 않는 유연한 전략을 가지고 있다”고 다윈을 비난했다.13 1981년에 호일레 (Hoyle)와 위클라마싱헤(Wickramasinhhe)는 아이슬레의 '용감한' 저항을 언급하면서 이렇게 기술했다. ” 다윈은 제 나름으로는 걸신들린 사람처럼 남의 저작물을 탐독했다. 그러나 그는 남한테서 얻은 것을 보답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리고, 증거들로 미루어 짐작컨대 [다윈이] 다른 학자들의 내용들은 고의적으로 누락(생략)시켰다는 결론 말고는 다른 결론이 있을 수 없다. 고의적으로 누락시킨 죄는 심각하다. 그런 까닭에 그 누락은 전문 생물학계에 되돌려지게 되었다.”14

찰스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자신이 블라이드와 통신을 교환하고 정보-인디언 가축의 습관, [아시아 야생 당나귀]의 튀기, 그리고 잡종 거위15에 관한-를 얻었다는 언급을 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이슬리가 토를 달아 한 말과 같이, 다윈은 ”블라이드를 분류(分類)학자의 역할에 한정시켜 놓고, 현장 관찰자 이상의 학자로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16 다윈은 왜 자기 이론의 핵심 요소를 가지고 있는 블라이드를 그토록 인정하기를 싫어했을까? 다윈은 왜 자연선택을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는 블라이드의 저작물을 인용하려 하지 않았는가? 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그 이유에 대한 대답은 아마도 두 가지 였을 것이다.

  1. 블라이드는 기독교도였으며, 또 오늘날 우리가 일컫는 '특별한 창조주의자' 였다. 예컨대, 계절에 따라 변하는 동물의 색 (산토끼의 색은 겨울에 흰색이 되는 것과 같은)에 관한 고찰에서, 블라이드는 이 사실을 ”놀라운 설계의 실례들이다. 그것은 극명하게 그리고 강력하게 전지전능한 위대한 제 1차 원인자의 존재를 증명한다”라고 말했다.17 그리고 그는 ”동물들의 생태는 초인간적인 지혜를 나타내고 있다. 왜냐하면 동물들은 태어날때부터 그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전지전능한 창조주가 그렇게 만드셨기 때문이다.”18 라고 말했다.

  2. 블라이드가 자연선택의 개념을 병들고 늙어 부적자로 된 자들을 생존자들로부터 제거시키는 하나의 메커니즘의 개념으로 간주한 것은 정확하다. 다시 말해서, 그는 자연선택을 창조된 종류에 대한 보전의 요인으로, 그리고 현상유지를 위한 메커니즘으로 보았던 것이다.19 에드워드 블라이드 (그리고 영국의 신학자 William Paley)와 같은 창조론자들은 자연선택을 속아내는 과정으로 보았다. 다시 말해서, 자연선택은 애초에는 존재하여야만 했던 여러 특성들 가운데서 특정 부분을 선택해내는 과정으로 보았던 것이다.

결론 (Conclusion)

역 사는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의 개념을 찰스 다윈이 발견한 이론으로 치부하는 고정관념에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자연선택 그 자체는 새로운 특성들을 생산하는데 필요한 추가적인 (유전) 정보를 제공하지 못한다는 사실과는 별도로, 다윈에게 귀속시켰던 주요 개념들-전부는 아니지만-대부분은 다른 사람들이 출판물을 통해서 이전에 발표된 적이 있었던 것들이었다. 다윈의 머리에서 태어난 이 '아들'이 진정 그의 소생이 아님은 두 말할 필요도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아들은 실상 여러 아버지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공명정대, 아니면 공포감? (Fairness or f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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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프레드 러셀 월리스(Alfred Russel Wallace; 1823-1913)는 말레이 군도에 있는 테마테 (Temate)에서 살고 있는 동안에, 독자적으로 진화 이론을 개발했다. 그 이론은 찰스 다윈의 이론과 거의 동일하였다.1 그는 1858년에 다윈에게 자연선택에 관한 필사본의 사본을 보냈다. 그 글의 제목은 'On the Tendency of Varieties to Depart Indefinitely from the Original Type'로 되어 있다. 그런데 그 글의 내용은 다윈의 진화 이론을 완벽하게 개관하고 있었다.2 찰스 라이엘(Charles Lyell)과 조셉 후커(Joseph Hooker) 같은 다윈의 친구들은 당장에 월리스의 필사본과 출판되지 않은 다윈의 두 편의 초기 이론을 묶어서 1858년 7월 1일에 개최되는 런던의 Linnean Society의 차기 회합에서 발표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이 회합은 완곡하게도 '합동 논문 (joint paper)'의 발표회라고 명명됐다. 그러나 이 모든 조치는 월리스의 참석 없이 진행됐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그가 알지도 못하는 중에 그리고 그의 허락도 받지 않고 진행됐었다. 사실상 월리스는 뉴기니 해안의 어느 섬에 있었던 것이다. 이 회합을 계기로 찰스 다윈은 서둘러 <종의 기원>을 탈고하고 이듬 해, 1859년 11월 24일에 출판했다. 소위 '합동 논문(joint paper)'은 다윈으로서는 공명정대하지 못한 처사였음은 물론, 차라리 월리스한테서 밀려날 것을 두려워한 공포감에서 저지른 처사였다고 보는 사람들이 없지 않다. 블랙맨드(Blackmand)는 ”최초로 완벽한 기원 이론과 자연선택에 의한 분화 이론을 쓴 사람은 다윈이 아니고 월리스다. 그리고 그는 이 이론에 대한 발표의 우선권을 1858년에 강탈당했다.” 3 라고 말하고 있다.

참고 문헌및 메모

  1. Wallace had been thinking on the subject as early as 1845, and had published a rather general paper on it in the Annals and Magazine of National History, September 1855, See ref. 2, p.78.
  2. Eiseley says, 'It was Darwin's unpublished conception down to the last detail, independently duplicated by a man sitting in a hut at the world's end.' Eiseley, L., Alfred Russel Wallace, Scientific American 200(2): 80, February 1959.
  3. Brackman, A., A Delicate Arrangement : The Strange Case of Charles Darwin and Russel Wallace, Times Books, New York, p. xi, 1980.

참고 문헌및 메모

  1. Grigg, R., 다윈 사상, 모든 게 그 집안 내력이다, Creation 26(1):16–18, 2003. 텍스트로돌아 가기.
  2. Hutton's views have been summarized as 'the present is the key to past.' Hutton's misconception is now sometimes referred to as uniformitarianism. 텍스트로돌아 가기.
  3. Reviewed by Paul Pearson in Nature 425(6959):665, 16 October 2003. 텍스트로돌아 가기.
  4. Pearson says that Hutton 'used the selection mechanism to explain the origin of varietied the idea of evolution between species as a 'romantic fantasy' 텍스트로돌아 가기.
  5. Quoted from ref. 3. 텍스트로돌아 가기.
  6. Quoted by Stephen Jay Gould in Gould, S., Natural selection as a creative force, The Structure of Evolution Theory, Belknap Press of Harvard University, Massachusetts, USA, p. 138, 2002. 텍스트로돌아 가기.
  7. Blyth, E, The Magazine of Natural History Volumes 8, 9 and 10, 1835–1837. Sourced from ref. 8, Appendices. 텍스트로돌아 가기.
  8. Source: Bradbury, A, Charles Darwin—The truth? Part 7—The missing link, www3.mistral.co.uk/bradburyac/dar7.html, 30 October 2003. 텍스트로돌아 가기.
  9. Darlington C.D., The origin of Darwinism, Scientific American 200(5):61, May 1959. 텍스트로돌아 가기.
  10. Eiseley, L., Darwin and the Mysterious Mr X, E.P. Dutton, New York, 1979, published posthumously by the executors of his will; from Eiseley, L., Charles Darwin, Edward Blyth, and the Theory of Natural selection, Proceedings of the American Philosophical Society 103(1):94–114, February 1959. 텍스트로돌아 가기.
  11. Ref. 10, p. 55. 텍스트로돌아 가기.
  12. Ref. 10, pp. 59–62 텍스트로돌아 가기.
  13. Darlington, C.D., Darwin's Place in History, Basil Blackwell, Oxford, p. 60, 1959. 텍스트로돌아 가기.
  14. Hoyle F. and Wickramasinghe, C., Evolution from Space, Paladin, London pp. 175–179, 1981. 텍스트로돌아 가기.
  15. Darwin, C., The Origin of Species, 6th ed. John Murray, London, 1902, pp. 21, 199, and 374 respectively. 텍스트로돌아 가기.
  16. Ref. 10, p. 52. 텍스트로돌아 가기.
  17. Blyth, E. (1835), ref. 7 텍스트로돌아 가기.
  18. Blyth, E. (1837), ref. 7 텍스트로돌아 가기.
  19. Wieland, C., 진흙탕물 : 자연선택의 분명한 혼란, Creation 23(2):26–29, 2001 텍스트로돌아 가기.